김장거리 파종을 마치고 나서 요즘 짧은 농한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지금 창밖에 보이는 우리 논에는 한창 이삭이 고개를 푹 숙이며 익어가고 있네요. 어제는 그 동안 잘 눈에 띄지 않던 논피와 알방동사니들의 대가리가 보이길래 논에 들어가서 피사리를 하려니 벼 포기를 잇는 거미줄이 어쩌면 그리도 많이 쳐져 있던지요. 그 거미들의 크기도 타란툴라가 연상될 만큼 자두만한 놈도 있었습니다. 벼농사에서 거미, 잠자리 등은 익충이라 그런지 그것들이 애써 쳐놓은 줄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피해서 다녔습니다. 올해 큰 이변만 없다면 우리 논은 작년보다는 쌀 수확량이 약 20% 가량은 늘 것 같습니다. 다른 논도 당연히 그만큼 좋겠지만 어차피 투입된 비용과 노동력에 비하면 형편없는 쌀값이라서 농가소득금액으로만 따지면 작년과 별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5월에 심은 고구마가 땅속에서 얼마나 여물었는지 하도 궁금해서 보름이상 이른 시기임에도 헤쳐보았더니 벌써 주먹만한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더군요. 여남은 개를 캐서 구워먹었더니 후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맛이 꿀맛입니다. 드디어 수확의 계절이로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답니다.
고구마 밭 옆에 심은 생강도 파보았는데 거름을 넉넉히 주지 않았음에도 심었던 생강조각마다 예닐곱 배나 커져있었습니다. 거름도 충분히 주고 2~3주 지나 더 키워서 캤더라면 열 배도 넘었을 것 이라네요. 아내는 이것으로 생강꿀차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팔기도 하겠다며 야심이 대단합니다. 워낙 많이 심었던 생강이라 이것들을 죄다 수확해서 꿀차로 만든다면 몇 백병은 되겠다 싶었습니다.
‘난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시중가격으로는 팔 생각 없으니, 알아서 재주껏 팔아보셔. 혹시 못 팔고 남으면 두고두고 먹던지 하자’고 했지만 아내는 무슨 자신감인지 제값(시중가격의 2배) 받고 팔 자신이 있는가 봅니다.
며칠 전 옆 동네 (한 살 어린)이장이 좋은 산삼자리 정보를 얻었다면서 이곳에서 20Km 떨어진 산으로 함께 갔다가 큰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전에도 어지간한 산은 모두 체력고갈 없이 무사히 다녀왔었지만 그 산은 크지도 않은 500m급 산임에도 온통 돌과 자갈로 덮인 산이라서 한발 한발 내딛기가 힘들었습니다. 한번은 디뎠던 돌이 힘없이 구르면서 그 위로 쌓여있던 돌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큰 사고를 당할 뻔도 했고, 낙엽으로 덮인 구덩이를 잘못 밟아서 3미터나 구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돌산에 산삼씩이나 있을게 뭐람. 산삼은커녕 도라지 구경도 못했네 그랴’ 투덜대면서 빈손으로 하산했지만 다시는 그런 돌산에는 위험해서라도 가고 싶지는 않더군요.
어떤 이유로든지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가 저처럼 귀농을 하려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돈이 될만한 일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4인 가족이라면 귀농 1~3년차까지는 그전보다는 다소 검소하게 살더라도 연간 2천만원 가량은 소요될 것입니다. 물론 해가 갈수록 자급률이 높아져서 생활비가 덜 들 것입니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연간 2천만원을 벌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그래서 농촌에서 제대로 정착해서 살아가려면 소득이 될만한 일을 빨리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설재배나 특용작물로서 수익모델을 만드려는 계획도 나쁘지 않으나, 돈이 될만한 그런 아이템들은 그에 따른 손실도 각오해야 합니다. 투자격언에도 ‘high risk, high return’ 이 있잖습니까?
저처럼 아예 그런 욕심도 없이 돈 없으면 없는 대로 덜 쓰며 살자는 식으로 농사에서 돈을 벌기보다는 적으나마 다른 곳에서 돈벌이를 하고, 농사는 자급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정착이 쉬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적으나마 농사 밖에서 돈벌이를 삼으려는 것을 소개하자면,
제가 사는 이곳은 다른 노령화된 농촌보다도 더욱 노령화 되어있고 인터넷사용 가구도 3집뿐이라서 대개의 농가는 인터넷직거래는 꿈도 못 꾸고, 생산되는 농산물은 농협에 넘깁니다. 지난 해의 경우 호박고구마 10kg한박스를 13,000원에 넘겼다더군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10kg를 25,000~30,000에 구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제가 친한 농가의 고구마를 15,000원에 모두 구매해서 택배비를 포함해서 25,000원에 직거래로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제 밭에서 난 고구마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5만원에 사겠다면 몰라도…)이런 방식이라면 생산자도 유리하고, 저도 박스당 5~6천원을 남길 수 있으니 100박스라면 50~6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셈입니다.
그 외에도 틈이 날 때마다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산삼을 캐기도 하고, 주변의 심마니로부터 산삼을 넘겨받아서 대신 팔기도 하는 방식으로 매 건당 10~50만원까지의 소득이 생깁니다. 지금은 산삼을 캐긴 힘든 시기이니 한동안은 산도라지, 더덕, 능이버섯, 영지버섯, 하수오 등으로 대체가 될 것입니다. 봄에는 돼지감자, 돌복숭아, 산딸기, 고사리 등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판매가 가능할 테지요.
이곳 외의 다른 곳에서도 소득이 될만한 아이템은 부지런히 찾아본 만큼 꽤 많이 찾을 수 있긴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돈벌이라 하더라도 도시인들이 매월 안정적으로 받던 월급을 넘기긴 힘들 것입니다. 소득도 매우 들쭉날쭉하고, 대략 월 150만원을 넘기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없는 돈에 맞춰서 다들 잘 살아갑니다. 만약 이렇게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면서 도시인들처럼 소득이 높다면 과연 농촌이 농촌다울 수 있겠습니까? 어느 것을 얻고자 한다면 잃는 것도 감수해야 당연한 이치겠지요.
가끔 제가 키우던 개 ‘달충이’(크림색 래브라도리트리버)의 소식을 묻는 분이 계셔서 알려드립니다. 드디어 이 녀석이 5살이 되어서야 장가를 들어서 자기 마누라(복실이)를 닮은 검둥이 아들(태평이)과 함께 한달 째 살고 있습니다. 지난 달 복실이로부터 태평이를 데려올 때는 3kg였던 녀석이 지금은 7kg에 육박합니다. 그야말로 나날이 폭풍성장을 하고 있지요. 요즘은 한가한 때라 하루에 2시간 가량은 이 녀석들과 산책도 하고, 태평이의 기본훈련을 시키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한가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달충 부자의 사진을 포토유 코너에 올려두었습니다.)
이러한 제 모습이 귀농해서 살아가는 평균적인 모습은 아닐 것으로 봅니다. 저처럼 당최 수확량에 연연하지도 않고, 흔한 관리기, 예초기, 수동분무기도 없이 오로지 전통농기구로만 자연재배농사를 지어 갖고는 농촌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필요하다는 2,000평의 농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저처럼 살다가는 의식주(衣食住) 중 ‘식’은 어찌어찌 해결될지언정 ‘의’, ‘주’의 문제는 해결하기 힘듭니다. 거기에다 부양가족이 많던지 또는 더 많은 소득을 올려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겠다는 욕심이 있다면 대단히 고된 육체노동과 그 밖의 추가적인 돈벌이를 위한 갖은 고생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농촌에 올 필요가 없겠지요?
귀농은 판타지(fantasy)가 아닙니다. 살아가는 방식의 한가지일 뿐입니다. 다만 육체와 마음의 균형을 위한 수행으로 삼겠다면 농사와 독서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쫓는 ‘돈’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서 10억이니 100억쯤 갖게 되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여기겠지만 막상 그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만족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전보다 더욱 불행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각오하고라도 처절하게 재테크를 하는 것도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런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저처럼 살아가는 것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곧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인 ‘자유로움과 행복’의 정도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저처럼 마음으로부터 하고 싶어하는 일을 선택하여 즐겁게 하는 사람은 매일 분뇨거름을 만지고 매 여름마다 모기에 500방씩 물려도 이런 삶을 좋아하므로 항상 천국에서 사는 것이고, 별로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일을 하거나 편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한 곳에 살더라도 그런 삶에서 속박과 부족함 속에서 살아간다면 바로 그곳이 지옥이라는 점을 말씀해드리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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