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여러분들 중 어지간히 잘나가는 직장인이 아니라면 이런 고민 안 해본 사람 없을 것입니다. 필자 역시 이런 고민을 비교적 짧고 산뜻하게 하고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두어 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다소 글을 쓸 여유가 없었네요.
필자처럼 귀농한 사람이 요즘 꽤 많습니다. 귀농인의 숫자만큼 많은 귀농사연이 있었겠습니다만, 저 또한 이런 결정에 대해 이해력이 떨어지는 주변 분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질타와 오해를 받았더랬습니다.
‘멀쩡한 직장 관두고 왜 갑자기 가려 하느냐’부터 시작해서,
‘언제 농사는 지어봤냐?’ ‘그깟 농사지어서 먹고 살수나 있겠느냐’는 둥,
‘그 동안 조용히 벌어놓은 돈이 많았었구나….’ 라는
등등의 우려와 빈정거림을 받으면서 드디어 농촌으로 와서 정착 중입니다.
다른 오해 따위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농사에 대한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은 거슬리더군요. 물론 그들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도시의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벌었던 사람들이고, 원래부터 농사를 잘 몰랐으니까, 또는 농사에 대한 경험은 있었으되 InPut 대비 OutPut이 적은 현실에 학을 떼고서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추사선생의 [세간양건사경독 世間兩件事耕讀] 이란 말씀대로 필자에게는 땅(농사)과 책(독서)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 여겼으므로 이것을 선뜻 선택했던 것이었고, 차라리 돈과 도시문명의 생활에 중독되어버려서 다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여러분들이 오히려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본 칼럼에서 필자가 농사가 제일 귀한 일이라거나 힘들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 말고도 세상에서 가치는 있지만 3D 인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겠어요?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현재의 일에서도 얼마든지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고, 항상 새로운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여염집의 아들처럼 필자도 28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나 오래 전부터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도대체 이 일을 통하여 세상에서 내가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대개의 직장인들처럼 열심히 돈 벌어서 쓰고, 놀고 조금씩 모아서 집사고, 애 낳아서 키우고, 부양책임으로 점점 더 많은 돈과 좋은 직장에 집착하고, 지위와 연봉에 휘둘려 사는 인생이 과연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인가?’ 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가끔 동료나 후배와 인생상담 같은 것을 해보면, 근본적으로는 돈, 결혼, 직장 문제 따위가 전부 입니다.
뭐 인생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니 현재를 즐기면서 살자고 한다면야 차라리 그것도 나름 대안이겠습니다만, 까르페디엠 정도로는 도무지 갈증이 해소되지 않더군요. 여러분들은 지금 현재만 즐기고 1년 후, 10년 후, 인생말년 등등에 대해서는 고민 안하고 사시는지요?
고민한다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 결국 다시 까르페디엠으로 컴백합니다만 이마저도 근본적인 해답을 주지는 않으니 돌고 도는 고민의 연속입니다.
거듭된 고민 끝에 나름의 결론을 얻게 되어서, 필자와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하시는 여러분들께 이것에서 탈출하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추천해드리는 것은, 한달 쯤 휴가를 내어서 인도의 불가촉천민촌이나 아프리카 내전 후유증이 심각한 르완다와 소말리아, 네팔 포카라의 티벳난민촌 등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출세는 감히 꿈도 꾸지 않습니다. 멋진 옷 입고 화장하고 자동차 몰고 다니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을 알지도 못합니다. 오로지 그날그날 밥 한끼라도 먹게 되길 소망하고, 무사히 하룻밤을 자는 것이 하루하루의 목표입니다. 우리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문명생활에 대한 욕심은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생존’ 그 자체가 그들에겐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심지어는 팔다리 어디가 다쳤어도 흔한 연고 한 개도 없어서 방치한 나머지 오염된 물과 공기 등 의 접촉으로 썩어 곪아가다가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 입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특권층의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인 문자조차도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을 악용한 도시의 사기꾼들에 의해서 평생 노예가 되거나 악성채무자가 되어서 동물처럼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단 한달 만이라도 체험하면 지금의 직장문제 결혼문제 돈 문제 따위는 대단히 사소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젊어서 한 달만 사서 고생하면 남은 인생 내내 더 이상 그 따위 문제로 번뇌에 휩싸일 필요가 없게 될 터이니 가히 최저비용의 [속성 고민탈출 실습코스]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추천해 드리는 것은 필자처럼 농촌으로 와서 농사지으며 사시라는 것입니다.
저도 몇 달 살아보니 좋으니깐 추천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動해도 돈 문제 자녀교육문제, 가족의 동의가 걸림돌이겠습니다만, 정교한 중장기실행계획을 짜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때문이지요.
농부가 되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물론 제게는 분명히 좋은 점인데도 여러분들에게는 나쁜 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지금 갖고 있는 엄청나게 유리한 점들을 활용은커녕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하물며 아래의 열거된 장점에 대하여 동의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대로 열 가지만 소개합니다.
첫째로는 아침마다 저를 깨우던 알람이나 아파트의 차량소음대신 새와 개와 개구리, 닭 등이 저를 깨웁니다. 기계음과 자연음이 정서에 주는 차이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둘째는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 일하는 시간, 주말과 평일 등의 개념은 제가 정합니다. 몸이 아프면 더 자도 됩니다. 상사도 없고 근로규정도 없고 러시아워가 없으니 늦게 일어나는 대신 뙤약볕에서 일을 더 한다는 각오만 한다면야 상관할 것 없습니다.
셋째는 어지간한 면 단위의 농촌에는 흔한 마트도 없고 당연히 영화관도 없고 외식체인점 따위도 없습니다. 돈을 싸 갖고 가도 돈 쓸만한 곳이 없습니다. 가계지출이 저절로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 가끔 차량을 가지고 외출을 하면 도로가 한적합니다. 지나는 차량이나 사람을 보면 반갑기까지 합니다.
넷째는 하루 종일 아내와 찰싹 붙어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부부인데 돈 번답시고 직장에 하루의 절반이상을 빼앗겨서 이별할 일이 없다는 점은 분명 최고의 장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동거할 뿐인 부부라면 귀농까지 권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되겠네요. 뭐 생각하기 나름이므로, 혼자만 귀농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많습디다.
다섯째는 저와 가족이 먹을 농작물을 제가 키운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수확량보다는 건강하고 안전한 재배에 역점을 두어 공부하고 적용합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한한 기쁨과 보람을 줍니다.
여섯째는 제 추측컨대 10년 이내에 다가올 온갖 문명의 위기 (에너지, 식량, 질병, 환경 등) 에 대해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필자보다 더욱 오지 산골마을에서 사는 어느 지인가족의 경우에는 전기, 통신, 석유 따위가 없어도 생존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18년 전 도시에서 엘리트로 살다가 귀농한 그들은 11~2월까지만 火木난방을 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식수, 목욕, 농업용수 등을 해결합니다. 처음에 서울에서 싸가지고 온 옷과 신발 등을 고쳐 입으면서도, 아직도 갖고 있는 옷가지 등만으로도 죽을 때까지는 입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주거형태는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흙과 나무로 지은 집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분에게도 부작용이 있더군요. 모처럼 서울에 왔다가 D도넛을 먹게 되었는데, 그거 한 개 먹고 20일간 장염을 앓았다고 하더군요. 너무 청정한 환경도 문제가 되는가 봅니다. ^^;;
일곱째로 농촌은 먹거리가 풍부합니다. 저는 아직은 심기만 한 상태라서 먹을만한 것들이 가을쯤은 되어야 생길 줄 알았지만, 이웃 어르신들이 지난 해에 심은 마늘, 양파 등을 요즈음 수확하셨다면서 이 마을에 아무것도 해드린 것도 없는 필자에게 이웃이랍시고 그 아까운 것들을 거리낌없이 싸주시기도 합니다. 상추나 시금치 같은 채소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엊그제는 옆집에서 3월에 심었던 햇감자를 캤다면서 한 소쿠리를 갖다 주시더군요. 조금 전에 막 캔 감자 삶아먹는 맛이 어떤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꾸~울꺽~)
여덟째는 도시와는 다른 따뜻한 공동체적 삶을 살수 있습니다. 도시의 공동주택은 무늬만 공동이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로 살다가 이사 가고, 집값 올릴 때는 똘똘 뭉치는 소위 ‘따로 또 같이’ 이웃입니다만, 농촌은 옆집에 몇 살 먹은 누가 몇 명이 사는지, 누가 아픈지 훤할 뿐만 아니라 그 집 자식들은 뭘 하는지, 밭에 뭘 얼마만큼 심었는지, 지난달 전기료는 얼마인지, 읍내에 무슨 소식이 돌고 있는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프라이버시문제에 대해서 민감하던 필자도 이런 농촌의 경계 없는 관심에 대하여 프라이버시가 불필요하게 여겨지더군요. 누가 갑자기 집에 찾아오거나 말거나 다른 이웃들처럼 매일 대문을 열어놓고 살고 있습니다.
아홉째,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40~50대가 새로 농사짓겠다고 오면 총애(?)를 받게 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이곳 말고도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다고 합니다만, 농촌은 방송에서 떠들어대던 것 이상으로 고령화가 심합니다.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다들 모이면 제 옆집에 사시는 66세의 어르신조차 귀여움을 받는다고 하네요. 하물며 저 같은 경우는 무슨 짓을 해도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용서가 됩니다. 그야말로 인사만 잘하면 90점은 먹고 들어가는 곳이 농촌인 것 같습니다.
열번째로 어설프나마 제가 시도하려는 자칭 ‘유기생명농법’를 한다면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땅에서 나고 땅으로 돌아감을 구체적으로 깨우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우리인간들도 자연스레 자연과 한 몸임을 알게 되고 다른 모든 생명 하나하나에 대한 고귀함을 알게 됩니다. 당연히 땅에서 자란 쌀 한 톨에도 감사하게 되지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 교육이 또 있을까요?
열 가지 장점 외에도 예닐곱 가지 장점이 더 떠오릅니다만, 이렇듯 농촌에서 살면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기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면 농촌에서 농부의 삶을 고려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물론 돈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체적으로 농사는 좋은 직업이 아닙니다. 귀농 7년 차인 지인의 경우 1헥타르(약 3천평)의 땅에서 1년 내내 뼈마디가 시릴 정도로 유기농법으로 일해도 소출기준으로 2,000만원도 나오기 힘듭니다. 운 좋게 특용작물이나 시설원예 따위로 억대연봉 어쩌고 소문난 사람을 들여다보면 열에 아홉 이상은 뒷구멍으로 빚진 돈이 수억이거나, 1~2년 단기적으로만 그 정도 매출일 뿐입니다.
이렇듯 돈(문명)의 관점에서 벗어나버리면 정년도 없고, 자율적이며, 건강문제까지도 해결되는 ‘농사’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고, ‘농부’만큼 자랑스러운 직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국내 최대 재테크까페인 텐인텐에 가입해서 전문가칼럼을 클릭했더니 기대했던 재테크관련 내용이 아니라, 전혀 생뚱맞은 제 글을 읽게 되어서 시간낭비라며 질책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많은 독자 여러분들이 이런 ‘생뚱칼럼’에 대해서도 응원해 주신다면 앞으로도 계속 제가 이곳 농촌에서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겪고 느낀 것들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여 유 ~ > 삶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귀농 Fantasy - 농촌에서의 돈벌이 (0) | 2011.10.15 |
---|---|
[스크랩] 썩어 나가는 돈 & 썩지 않는 배 (0) | 2011.10.15 |
[스크랩] 친구나 가족이 돈 빌려달라고 할 때 (0) | 2011.10.15 |
[스크랩] 사기치는 법 & 당하지 않는 법 (0) | 2011.10.15 |
[스크랩] 돈 계산 보다는 훨씬 이익이 되는 계산법 (0) | 2011.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