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던 지난 장마 뒤끝이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쇠스랑으로 40Cm넘게 높이 만든 두둑은 절반 이하로 무너지고 물길역할을 하는 밭고랑은 높아져서 작물이 습해가 심해졌고, 많이 심지는 않았지만 양배추, 양상추, 브로콜리 수박, 참외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전멸에 가깝습니다. 저야 식구들 먹거리 용도니까 상대적으로 타격이 크지는 않지만 이것들을 생업의 수단으로 삼았을 농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급한 것들은 모두 치우고, 10년 먼저 이곳으로 귀농했던 심마니 형님을 따라 인근 산에 다시 올랐습니다. 지난 봄부터 틈만 나면 따라다녔지만 아직도 졸졸 따라다니는 것조차 벅찬 수준입니다. 그래도 이젠 제법 산행을 하면서 눈썰미가 늘어서 산삼 외에도 영지버섯, 둥글레, 더덕, 산도라지 정도는 시야에 들어옵니다. 둥글레와 영지버섯은 잘 말려서 보리차를 끓일 때 같이 몇 개 넣어주면 그 맛이 좋기 때문에 아내도 무척 좋아라 합니다.
지지난 주에는 처음으로 약 15년근쯤 되는 산삼을 캐서 요즘 부쩍 야위어가는 아내에게 먹였습니다. 그 약발인지 하루 두 끼 먹던 것조차 깨작깨작하던 사람이 끼니마다 먹는 양도 부쩍 늘었을 뿐만 아니라 두어 시간 지나면 배고프다고 또 먹을 것을 찾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후로는 밤에는 어찌나 깊은 잠을 자던지 요즘 같은 열대야에도 잠꼬대까지 하면서 잘 잡니다. 아내도 신기하다고 하더군요. 엊그제 캔 25년근산삼은 제가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만, 저 같은 멀쩡한 사내가 먹으면 그 높은 약성으로 인한 양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난치병을 앓는 사람에게 팔던지 안 팔리면 가까운 가족과 존경하는 분들 순서대로 먹이기로 했습니다. ^^
저 같은 천동마니(풋내기심마니)가 산삼을 캔다고 하니까 누구나 쉽게 산삼을 캘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할까 싶어서 미리 당부하는 바입니다만, 야생삼을 캐러 산행을 하는 것은 잘 닦여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것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물론 등산을 좋아하던 사람이면 훨씬 유리합니다만, 등산과 다른 점은 독사에 물릴 경우를 대비하여 항상 장화를 신은 채 사람이 다니지 않던 곳을 따라 절벽, 계곡 같은 곳도 오르내려야 하고, 넝쿨에 걸려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는 일도 다반사이며 야생벌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눈을 부릅뜨고서 습도와 일조량, 부엽토, 주변의 나무들 등의 생육조건이 맞는 곳에서 풀숲에 묻혀있는 산삼을 찾아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레 풀섶의 뱀이나 멧돼지 등의 위험동물도 맞닥뜨려야 하고, 제게는 가장 힘든 점으로 요즘처럼 덥고 습한 때 체력소모도 클 뿐만 아니라 한번 갈 때마다 독한 산모기에 최소한 스무 방의 헌혈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런 고생을 하고서 영지버섯 하나라도 캐오면 참으로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캐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만 그럴 때는 그저 공짜로 삼림욕을 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내는 가장으로서 어느 정도의 돈벌이는 필요하지만 전업심마니는 완강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워낙 위험한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전업으로 하고, 부업으로만 가까운 산 위주로 다니려고 합니다. 그래도 논에서 피사리를 하다 보면 자꾸 산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도시인들은 이런 생활을 로망으로 여기는 분들도 많을 거라 봅니다. 제 생각도 돈 안되는 것만 빼면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적이고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철전지 원수 같은 돈벌이가 항상 우리들의 로망을 짓밟아버리곤 하지요.
제가 하도 여기 저기 칼럼에서 돈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더니 어떤 이는 ‘현대문명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그 누구도 단 하루도 살수가 없는데 왜 돈을 천시하느냐’ 라고 하더군요. 그의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당장 제가 신고 다니는 장화도 7,000원을 주고 산 것이니 돈이 없다면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삶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자신에게 비굴하지 않은 선에서 돈벌이를 하려는 것이지요. 돈이 많거나 적거나 어떻게 되더라도 마음에 걸림이 없게 육신이 구속되지 않은 삶을 살라는 것이었지 돈을 모두 버리고 살라는 말은 아니잖습니까?
도시의 토지전문가들은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1~2년 사이에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의 전답 시세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가까운 충청, 강원지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고, 그보다 먼 지역도 최소한 50% 이상 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만 하더라도 전답매물은 나오자마자 누군가가 낚아채버리고, 심지어는 일조량이 좋고 경사도가 낮은 임야까지도 덩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들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만, 이런 추세는 더욱 심해질 것 같고, 급기야는 영호남 지역까지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니 이로 인하여 여러분들 같은 도시인들에게 가장 큰 피해가 돌아갈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소비생활에 대한 재점검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별로 실용성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시욕으로 사거나, 아주 가끔만 필요할 뿐인데도 일단 장만해두기도 하고, 음식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많이 버리고, 쓸데 없이 자가용을 운행하고 통신비로만 연간 수백 만원의 지출 등등… 게다가 최근 제 지인들을 보면 보험회사의 협박마케팅에 속아서 집집마다 가족마다 몇 개씩 든 보험료를 내느라 막상 꼭 써야 할 곳에는 돈을 못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도시에서 산다고 해도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100만원이면 기본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한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개인마다 휴대폰이 꼭 필요할 이유도 없고, 지금 갖고 있는 옷만으로도 잘 수선하면 죽을 때까지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가용은 한 달에 1~2번 말고는 운행할 필요도 없지요.
이렇게 근검 절약하면서 살수만 있다면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를 매일 비굴한 마음을 안고서 다닐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월급을 100만원만 받더라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터로 가면 됩니다.
소비를 절제하는 것 자체로도 공덕이 매우 큽니다. 그만큼 자원낭비와 환경오염도 줄이는 것이니 좋고, 청빈한 삶은 동서고금의 성인들이 권하는 삶의 태도이므로 내세에도 도움이 됩니다.
더럽고 치사해도 가족을 위해서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를 대는 사람을 보면 대단히 위선적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지요. 직장에서 돈 벌어다 준다고 해서 가족이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기를 무참히 희생해서 가족을 위한다는 사람은 정작 가족을 위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으면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면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며,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면 남의 마음도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알아야 자신을 이롭게(행복하게)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며, 그래야 가족과 동료와 세상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잘 알고자 한다면 돈과 직장과 명예, 권력을 모두 놓아버리고서, 내면 깊숙한 곳에 짙게 깔린 욕심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무엇인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등등 이런 화두를 가지고 자기를 깨워보시면 어딘지 모르게 헤매기만 하던 인생항로의 방향타가 뚜렷이 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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