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우리 논밭은 거름기가 부족하여 이번 주말부터나 수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만 이 동네 모든 분들은 지난 주부터 들로 나가서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렇게 수확된 것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 간단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엊그제는 제 이웃집에서 벼 타작을 하고 말린 나락을 30~40Kg짜리 조곡포대에 담아 경운기에 실어서 1Km쯤 떨어진 곡식창고로 실어 나르는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포대숫자를 헤아려보니 어림잡아 300~400여개는 되어 보입니다. 20년이 넘은 12마력짜리 경운기에 한번에 1.2톤(35포대쯤) 실을 수 있으니 최소한 10번은 왕복했을 것입니다. 벼 타작이야 콤바인이 해주고, 사흘간 나락을 말리는 것도 번거롭긴 하되 크게 힘이 들지는 않으나, 경운기에 싣고 내리는 일은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야 3~40Kg짜리는 거뜬히 들지만 100번쯤 반복하면 혹시 팔뚝 인대가 늘어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후들거립니다. 그래도 동네에서 제일 젊은 놈이 시원찮다는 비웃음을 들을까 싶어 누가 보지 않을 때는 몰래 주물러주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풀어줍니다. 지금까지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제 손이 후덜덜 떨립니다.
자청하기는 했지만, 자기 것도 못하면서 남의 농사일을 도와주는 제가 고마운 것인지 짠한 것인지 수시로 말을 거십니다.
‘달충 애비! 힘들지 않은가?’
‘헥헥~ 힘들긴요. 오메…어르신 땀 좀 봐요…킥킥. 이제 노쇠하셔서 근력이 딸리시는 갑네요..잉?
‘에잉… 저런 느자구 없는 사람을 봤나. 자네 땀이나 닦으소. 하기사 나도 여기서는 젊은 축에 끼긴 하지만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구먼.’
이렇게 하여 해거름이 되어서야 겨우 작업을 마쳤습니다. 다음 날에는 고마움의 표시였는지 점심초대를 하십니다. 5일장에서 막 사온 간재미(가오리)회와 꽃게탕에 점심을 먹으면서 우연히 올해의 손익계산을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이분께선 논 자경 3천평 (15마지기), 임대 2천평(10마지기), 집 뒤의 밭 자경 400평 규모로 농사를 짓습니다. 주 소득은 쌀이고 밭에서는 두 자식들 내외와 사돈 댁, 당신 내외가 먹을 것을 빼고 나면 기껏해야 들기름이나 고구마, 양봉에서 얻는 소득 200여만원이 전부랍니다. 그래서 주력사업(?)인 쌀의 손익을 따져보니까 하도 기가 막혀서 눈물이 찔끔 맺히더군요.
대략 소개하자면 찹쌀과 멥쌀 90여가마를 농협 등에 넘기면 약 1,100만원이 들어오는데, 여기서 이앙기(모내기), 트렉터(밭갈기), 콤바인(수확) 비용 270만원이 빠지고, 방앗간에서 도정할 때마다 10%를 줘야 하고, 남의 땅 10마지기에서 농사짓는 임차료 100만원 남짓을 줘야 하고 기타 비료와 농약, 기타 농자재 값 등으로 연간 150만원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600만원의 지출이 발생하는데, '논농사직불금'이라고 해서 연간 240만원을 보조 받으니 쌀농사로 얻는 총 소득은 740만원쯤이 된다고 하네요. 밭에서 얻은 소득을 합쳐도 1,00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분의 영농규모는 저의 5배가 넘는 것을 볼 때 그만큼 고된 일을 하고도 과거 직장에서의 두어 달치의 소득도 안 된다고 하니 이래저래 안타까움에 눈물이 찔끔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쌀값을 제일 높게 쳐줄 때가 언제였어요?’
‘한 10년전쯤인가? 한 가마당 약 16만원 받은 적이 있었지'
지난 20년간 자장면은 4배, 버스요금 5배, 삼겹살은 8배, 휘발유는 5배가 올랐다는데, 왜 쌀값은 오히려 떨어질까요? 농사짓는 데에 꼭 필요한 기계 값, 농자재 값도 모두 그만큼 올랐고 경작지는 줄었는데, 왜 쌀값은 안 오르고 내리기만 할까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쌀값이 부담된다고 합니다.
이 같은 현실을 볼 때 쌀값이 과연 비싼 것일까요?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한 가마(80kg)도 안 된답니다. 무농약 쌀 기준으로 20만원도 안 되는데 1인당 연간 통신비로는 50만원도 넘게 씁니다. 자가용 관련한 비용으로는 가구당 연간 500만원도 넘게 쓸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예 없어져도 생존에는 지장 없는 통신이나 자동차에는 관대하면서도,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필수품목인 농산물 지출비용에는 가혹합니다.
‘어르신께서는 연간 천만원도 안되는 소득으로는 먹을 거야 해결된다손 치더라도 옷도 사 입고 난방도 해야 하고 돈 쓸 일이 많은데 너무 힘드신 거 아닌가요?’
‘뭐 많으면 좋겠지만 없는 돈을 어쩌겠어? 없으면 없는 대로 맞춰 살아야지.’
농부들이 무지하고 순진해서 쌀농사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던 일에서 소득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자기의 전공과 경력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도시에서 전혀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평생 지어먹던 땅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입니다. 논의 평당 소득이 밭보다 떨어진다고 해서 논을 밭으로 바꾸려면 그 비용도 평당 몇 만원이 필요하니 말이야 쉽지 현실적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경우 당분간은 농사만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므로 의존도가 낮습니다만, 언젠가는 제가 하려는 전통자연재배농법에 성공을 하고 농사지을 땅을 더 얻게 된다면 분명히 여느 농가처럼 손익계산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껏 키운 것들을 지금처럼 제값도 못 받고 넘겨야 하는 사태가 온다면 그 꼬라지를 곱게 봐낼 자신은 없군요. 저는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괴로워하거나,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끌어당겨서 고민하는 중생놀음은 안 합니다만 제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앞으로도 우리 농촌이 이런 궁핍 속에서 살수 밖에 없다면 머지않아 우리 농업은 붕괴될 것이고, 결국 우리 국민들도 소위 ‘국내산’농산물대신 미국산 광우소나 GMO농산물만 먹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런 위기는 우리 농부들만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50%쯤은 절약이니 재테크니 하면서 오로지 보기 좋고 입맛에 좋은 것만 찾고 돈을 신앙으로 여기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의 뿌리, 우리 자자손손이 살아가야 할 땅, 그 땅을 지켜주는 농부들을 배려하지 못한 모든 국민들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30%쯤은 오로지 돈에 미친 대다수 국민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오로지 공업과 서비스에만 주력하는 정책당국자들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살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속성 때문에 누구나 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먹고, 더 좋은 것을 입고, 이를 위해서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며, 기왕이면 더 싸게 살 수 있는 것이면 더 싸게 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속성을 고집한다면 결국은 인간들의 이익이 지켜지기는커녕 큰 손해가 올 것입니다.
짧게 볼 때는 손해인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자신과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킬 것은 반드시 지켜줘야 합니다. 쓰레기 처리 문제, 온난화 문제, 자원 문제, 생태계 보전 및 수질오염 문제 등등이 그렇고, 우리의 생명창고인 농촌을 지키는 문제들 또한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삼성이 반도체와 휴대폰을 많이 팔고, 현대가 제 아무리 수천 만대의 자동차를 팔아도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먹거리 문제만큼은 자주적으로 영원히 지켜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이 크고 길게 보아서 지혜로운 재테크이지, 코앞에 보이는 금리가 어쩌니 주가, 환율, 원자재 시세 따위를 중심으로 재테크를 논하는 것은 그저 탐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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