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님/여 우 1

[스크랩] [짝잃은 여우님의 주식강좌] 22

Time(천둥새) 2007. 10. 15. 10:11
 

님들!! 제가 마니 미우신가요?     


아마 님들 중 상당수는 제가 엄청 싫으실 꺼예요. 또 그런 분들 중 상당수는 제가 단지 쫌 맛이 간 과대망상증 환자일 꺼라고 생각하시면서 스스로를 위안하려 할테죠. 맞죠? 자 그럼 이런 분들이 왜 저를 미워하면서 요렇게 절 매도할 수밖에 없는지를 아주 객관적으로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보나마나 이런 분들은 주식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습득할 수 있는 주식투자방법이 있다고 믿는 분들일 껍니다. 글구 그게 자신의 노력이나 경험의 산물로 얻게된/얻게될 자기만의 노하우나 무형자산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일 테구요. 이런 상황에서 이분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나 무형자산, 즉 자신의 주식투자 방법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부정(否定)하는 저의 얘기가 엄청 싫었겠죠. 고로 당연히 제 얘기가 엉터리라고 무시하고 싶었을 테고 또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며 평가절하한 후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싶었을 껍니다. 그렇쵸? 안봐도 뻔해요. 참고로 세상엔 님들이 고딴식으로 생각하길 바래는 사람들이 참 많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런 분들의 생각이 100% 틀린것은 아니예요. 전 그 동안 님들이 주식에서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게임 방식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그 가치를 부정해 왔습니다. 물론 제가 심리학적 접근방식에 대해서만은 특별히 언급한 적이 없지만, 그 외의 거의 모든 주식접근 방법에 대하여서는 부정해왔죠. 고로 님들이 아무리 특이한 방식으로 주식게임을 하고 계시다 하더라도, 님들은 제 얘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거예요. 즉 제 얘기를 자신과 전혀 무관한 얘기로만 치부하고 외면하시기가 힘드셨을 꺼란 얘깁니다. 물론 이게 실패담에서 제 글이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일꺼구요. 참고로 제가 심리학적인 접근방식에 대하여만 관대했던 것은 그런 방식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어떤 게임의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상황설정이 아니므로 딱히 고놈을 구조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지 고게 어떤 가치있는 접근방식이라 생각해서 그랬던건 아니랍니다. (욕하실 분이 몇 사람 또 늘어날 것 같꾼요?)


자 그럼!! 제가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걸까요? 즉 님들의 관심을 끌만한 새로운 얘기를 하는 듯하면서, 기존의 어떤 일반적인 게임방식을 부정하고, 또 다시 새로운 걸 얘기하는 척하다, 또 다시 또 다른 주식 접근방식들을 부정하는 짓을 연속해서 한 이유가 뭘꺼 같냔 질문입니다. 그냥 말장난이나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떼우려고 그랬을꺼 같나요? 마치 삐삐처럼요?(참고로 전 삐삐가 아니예요) 물론 그건 아닙니다. 전 님들이 주식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을 수 있게끔 주식게임의 기본적인 구조를 설명드리면서, 또 한편으론 님들이 갖고 계신 주식게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나 상식들을 하나하나 모조리 없앨려고 그랬던 겁니다.


그럼 왜 저는 님들이 사용하고 계신 게임방법들이나 게임에 대한 상식들이 죄다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걸까요?  그건  자본의 흐름이 가장 원시적이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주식게임 속에서, 님들이 자본의 성질이나 흐름을 모르시면서 주식게임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지금 님들이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주식게임에서 돈을 벌고 있다 해도, 그건 결국 찰나의 환상일 뿐  지금 님들은 주식의 위험성에 완전히 노출돼 있단 거죠. 즉 님들이 주식게임의 본질이 뭔지도 모르면서, 주식게임을 걍 우습게 생각하며 님들 멋대로 놀다간, 결국 님들은 게임 속에서 님들의 선배들처럼 아주 비참하게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란 얘깁니다. 심하면 그대로 세상을 떠날 수도 있구요.


지금까지의 제 얘기를 믿고 또 제 얘기를 스스로 깊게 생각하신 분이라면, 지금은 상당히 큰 갈등를 하고 계실 겁니다. 즉 주식의 본질에 대한 엄청 큰 의문을 갖게 되셨을꺼란 얘깁니다.

글구 그중 아주 일부는 이미 갈등의 단계를 지나 제가 말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보는 법과 여는 방법, 글구 또 그걸 열었을 때의 상황에 대한 바른 호기심을 갖게 되셨을 테구요.

만약 님들이 지금 주식게임의 본질에 대한 갈등을 하고 있지 않거나, 또는 바른 호기심을 갖고 계시지 않다면, 님들은 제 말을 믿지 않았거나 또는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하시지 못하신 겁니다. 물론 이런류의 분들은 추후 별도 학습으로 구제해 드리겠으나, 아직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는 몇 마리의 건방진 안티들은 걍 버리고 갈수도 있죠. 물론 이들은 추후에 뼈저리게 후회하며 저를 생각하겠죠. 엄청 후회하면서…. 하지만 그땐 제가 여기 없을 껍니다. 고로니 웬만하면 지금이라도 전향한 후, 함께 가길 바래요. 흥!! 싫음말구!! 바부탱이넘들!!


암튼 저는, 저를 믿고 갈등의 단계까지 와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님들은 최소한 판도라의 상자를 보실 수 있는 눈을 가지신겁니다. 하지만 보는 것을 넘어서 그 상자의 뚜껑을 여는 과정이 고렇게 만만하진 않아요. 그렇다고 넘 걱정 안하셔도 돼요. 지금 님들이 느끼는 갈등 또는 그 마음만 유지한다면, 결국 님들은 그 상자를 열수 있게 될 꺼구 또 그를 통해서 그 상자 안에 있는 주식게임의 본질, 즉 자본의 흐름을 보실 수 있게 될 껍니다.

고로 이런 과정을 다 마치신분들은 추후 주식게임의 위험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게임을 즐기실 수 있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주식게임으로 돈 잃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게 된다는 얘깁니다. 빨랑 그렇게 되고 싶죠? 네 되도록 빨랑 그렇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님들 마음을 항상 똑같이 유지하셔야만 그런 능력이 유지가 돼요. 아셨죠?


오늘은 님들의 마음이 항상 어떤 상태로 유지되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정의해 드리고 또 이런 마음을 유지한 분들이 추후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열 때 꼭 아셔야하는 자본의 기본적인 성질 중 한 가지를 갈켜 드리겠습니다.


님들!! 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불교신자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요 대충 이런 것 같애요.

자신이 존재하는 시공간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후, 확대된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자신의 눈이 아닌 절대자의 눈으로 봄으로서, 그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또는 그 시공간을 넘어 영원 속에 존재하는 삼라만상들의 보편적 질서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답을 깨닭은 후, 그 이해를 다시 한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자신에게 주입시킴으로서, 그 시공간 속에 살게 되는 자신에게 최선의 삶의 판단기준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고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종국엔 이런 깨달음을 통한 해탈일수 밖에 없고, 고로 이런 깨달음을 얻는 부처님은 항상 다수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또 이런 깨달음은 사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현실 속에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구요. 마하가섭님!! 맞나요? 제가 마니 틀렸나요?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런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였다면, 우리는 불교의 가르침으로부터도 주식게임에서의 깨달음의 길도 유추해 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의 깨달음이란 것은 아주 단순하고 한정된 주식게임 속에서의 바른 질서(게임의 법칙)를 깨닫는 것에 불과 하므로, 시간과 공간적으로 한정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진 삶속에서의 바른 판단기준을 추구하는 불교의 깨닫음하 고는 근본적으로 그 차원이 다른 것이 겠지만은요. 제가 불교를 넘 단순화 시킨 것은 아닌지 쫌 걱정은 되지만, 왠지 이런 불교의 방법론만을 주식게임의 참가자들이 운용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꺼 같네요. 그렇죠?


그럼 불교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님들은 무아(無我)의 상태에 도달하셔야만 합니다.

게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제거한 후, 자신이 존재하는 게임뿐 아니라 게임전체를, 게임의 최종 지배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후, 게임의 본질과 또 게임속에서 움직이는 자본의 흐름과 또 그들의 의도마저도 보셔야 합니다.

물론 그런 것을 다 본 후, 님들은 가장 바른 게임의 판단기준을 정하신후, 다시 어느 게임속에 존재하는 자신들에게로 돌아가셔야 하구요.

어렵죠? 아니 어려운 것이 있다면, 님들의 마음뿐입니다.

즉 자신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로 보내는 것이 어렵지, 다른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랍니다.


명심하세요. 님들의 마음이 무아(無我)의 경지(境地)에 있지 않는 한, 님들은 평형(平衡)을 추구(追究)할 수 없으며, 고로 님들은 어떤 사고(思考)의 발전(發展)을 갖을 수 없습니다. 즉 무아의 상태는 사고의 확장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란 얘깁니다.


無我 의 境地


平衡 의 追究


思考 의 發展


이 말은 심리학적인 접근방식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마 이 말은 제가 주식게임에 대하여 님들게 해드릴 수 있는 얘기 중 가장 가치있는 말일 껍니다. 혹 몸에 낙서하며 막사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팔뚝이나 어깨에 이 글자 몇 개 더 집어넣으세요. 글구 잘 안씻는 분들은 걍 사인펜으로 하시구요. 물론 얼굴에 쓰셔도 좋습니다. 뜻이 좋은 말이니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을 꺼예요. 단지 이런 경우, 넘 싸돌아 다니시면 안됩니다.


님들!! 제가 왜 정치 세력들한테 일말의 기대도 갖지 않는지 아세요? 그건 그들의 마음속에 분노와 자만이 숨어있기 때문이예요. 즉 한나라당이건, 우리당이건 민노당이건 그들이 말하는 우리 속엔 자만과 분노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 때문이란 얘기예요. 님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선 반드시 무아의 경지에 서있어야만 하는 거예요. 글구 그런 무아의 상태에선 절대로 분노나 자만 같은 것들이 존재할 수가 없구요. 그러나 울나라 정치지배세력들은 그 누구도 그런 경지에 서있을 수 있는 역사를 갖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도 그걸 용납하지 않았구요. 한편으론 이런 그들이 안타깝고 또 한편으론 이런자 들이 정치지배 세력으로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 이들에게 어떤 희망도 갖고 있지 않으며 고래서 선거란 것도 해본지 참 오래됐습니다.


님들!! 희망이란 것은 가능성이 보일 때만 그 가치가 가장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엄청 아름다울 수 있는 단어를 돼지 저금통 같은데다 함부로 붙이면 않되겠죠. 넘 샛길로 빠졌꾼요. 그럼 오늘 얘기를 시작 하겠습니다.


님들!! 제가 그동안 자본, 자본하닌깐 제가 혹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좋아하는 사람일꺼라고 생각하시진 않았나요? 만약 그러시다면, 님들은 절 완전히 착각하신 겁니다. 전 말이죠. 그 사람의 이론뿐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상상을 한 의도까지도 철저히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고래서 전 이 사람의 이론을, 남들보다 자기가 더 정확히 이해하고, 그걸 현실에 맞춰 더 발전시켰다고 떠벌이는 똘아이 학자들을 엄청 싫어하죠. 한마디로 꼴깝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든단 얘깁니다. 


님들!! 마르크스란 자가 말한 자본론은 오직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본 후, 계급투쟁의 정당성만을 부여하기 위한 몸부림침에 불과했던 겁니다. 그는 절대로 자본이란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없으며, 고로 그의 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아주 단기적 효용성만을 갖는 이론에 불과하단 거죠. 이런 것을 지덜 멋대로 확대해석하면서 아직도 그의 이론에 심취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세상을 넘 쉽게 바라본 자들의 자아도취에 불과한 겁니다. 다시한번 언어의 중요성만을 느끼게 하는 일이죠.


골치 아픈 얘기는 이쯤으로 하고 걍 님들이 알아야 할 자본에 대한 성질중 하나를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본이란 것을 정의할 때 “생산을 위한 재고(stock)”란 말로 정의를 합니다. 즉 당장의 생존을 위한 소비대상에서 제외는 것을 의미하죠. 요걸 따른 말로 표현하면 잉여물이라고도 한답니다. 그럼 또 생존을 위한 소비물은 또 어떤 식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요?


님들!! 화폐시장 경제하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한 달을 생존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까요? 100만원?, 200만원?, 500만원? 아님 1,000만원? 아마 이건 자신 외엔 누구도 알 수 없을 꺼예요. 즉 님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일꺼란 얘깁니다. 글구 단지 님들이 처한 상황뿐 아니라 님들의 욕심까지도 포함되야 확정될 수 있는거니, 어쩜 님들 스스로도 정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예 맞습니다.

인간이 어느 단위시간동안에 생존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소비물의 크기는 그 누구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답니다. 즉 그 크기가 아주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거란 얘기죠. 고로 그 단위공간& 단위시간에 존재하는 자본의 크기도 항상 유동적이며 가변적일 수밖에 없죠.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사회에 존재하는 자본의 크기는 어떤 한계상황 하에서도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겁니다.

더 쉽게 말하면, 그동안 경제학자나 정부에서 떠벌였던 “일단 빵을 키우자”란 말속에 들어있는 “키우자”란 말의 객관적인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단 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식자들이 말하기를, 생산성은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즉 자본이 클수록 큰 생산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얘기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대 자전거로 사람을 나르는 것보다, 기차로 나르는 것이 헐 생산성이 좋다는 얘기겠죠.


맞는 얘깁니다. 자본의 크기는 생산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한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생산성을 키운다는 말속엔 자본의 확대성이 숨어 있단 거죠. 고로 이 확대성은 누구의 생산성을 키우는 것이냐는 질문을 님들에게 던지는 것일 테구요.


울나라 재벌들 및 그들을 비호하는 사람들이 요즘 즐겨쓰는 이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석유자원의 부재로 인하여, 불완전한 발전모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우린 오직 경쟁력있는 분야에 집중투자(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의 집중화)를 함으로서, 해외시장에서의 우리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또 이들 통하여 우리의 한계성을 극복해야 한다 라는 주장들 이죠. 이거 일반인들이 언뜻 들으면 당연한 말인거 같고 또 바로 수긍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식게임을 몇 년 해보신 분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주장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주식에서 한 종목의 몰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아시는 님들은 한국의 자본이 어느 한곳에 집중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단 겁니다. 한국 재벌들이 언제부터 시장을 정확히 예측하여 집중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습니까? 오늘의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의 정확한 시장예측을 통한 집중투자의 산물입니까? 한국재벌들이 과거 직원 20여명도 안되는 소기업마저도 위장 자회사로 운영하며 분산투자를 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건을 어찌 아직도 그들과 그들의 비호세력들은 집중투자의 효율성을 주장할 수 있나요? 그들이 말하는 우리란 단어 속에 님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생존에 필수적인 소비물과 자본의 크기가 어떤 절대상황 하에서도 절대로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인대, 그걸 누가 님들을 위해서 객관적으로 규정해 줄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님들!! 시장은 본질적으로 게임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점도 더러 있죠. 그 비슷한 점이 바로 이겁니다. 즉 여러 분야시기를 달리한 분산투자 방식이 헐 합리적인 투자방식이지 절대로 건방지게 시장의 흐름을 예측한 후, 집중투자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엘카에 몰빵치겠다는 것과 동일한 짓이죠.


이런 짓은 오직 자본의 흐름을 악용하여 시장을 지배하는 자들만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한국재벌이 해외시장을 겨냥해서 이런 짓을 하겠다는 것은 아예 첨부터 그런 의도가 없던 거짓말이거나 아님 주제 파악를 못해서 하는 헛소리겠죠. 그것도 아니면 뭐 자신들의 자본집중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려는 광고쯤 되는 것일 테구요.


시장이 게임화 됐을 경우, 게임의 피지배자들이 게임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오직 자본의 흐름에 본 후, 그것에 맞는 대응뿐입니다.

고로 자신이 게임 속 자본의 흐름을 만들겠다는 울나라 지배세력이나 재벌들의 이 같은 짓은 한마디로 착각이거나 헛소리란 얘기죠. 


이런류의 착각이나 환상 또는 거짓말이 난무하는 그 근본 이유는 딱 2가지 입니다.


첫째는 자본이란 것이 갖는 상대적 성질 때문이구.

또 하난 자본을 갖은 자들이 자본이란 것이 무엇인지? 또는 자본이 어떤 식으로 시장을 형성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거나 엄청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쉽게 말해서 시장과 게임을 혼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혼동이나 착각은 그들의 사고의 한계를 의미하는 거구요.


님들이 게임 속에서 사고의 한계를 넓히지 않는 한, 님들은 절대로 님들이 갖는 게임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죠. 이것과 마찬가지고 실물경제 속에 존재하는 울나라 경제주체들, 특히 지배권을 갖는 독점 산업자본들과 정치지배세력들도 스스로 사고의 한계를 넓히지 않는 울나가 갖는 경제적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답니다. 


물론 그 사고를 넓힐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자신을 무아의 상태로 만든 후, 어떤 상황을 시간과 공간적으로 최대한 확장시킨 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일 테구요.


글구 이런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독선, 이기심, 분노와 자만 등을 버려야만 하는 걸 껍니다.


아!! 이젠 대충 결론을 낼 수 있을꺼 같습니다. 절 미워하는 분들의 근본원인은 그들이 갖고 있는 피해의식에 의한 분노이거나, 아님 자아도취식 편협한 자만심일꺼 같꾼요.


님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최종 책임자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그의 사고한계는 결국 삼성그룹까지만 확대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게 됩니다. 글구 노무현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그의 사고의 한계는 또 대한민국이라는 것까지만 확대될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갖구요. 하지만 님들은 이런 높으신 위치에 존재하는 이런 휼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로 님들 사고의 한계는 끝이 없죠. 마치 저 넓은 우주처럼요. 이제야 구상시인이 왜 가난한 삶을 살라고 했는지, 또 왜 마음이 가난한 삶을 지향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겠꾼요. 글구 왜 그토록 비천한 삶의 역사를 가진 유대인들이 그토록 찬란한 상상들을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지도 알 수 있게 됐구요.


님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가난은 어떤 면에선 가장 큰 신의 축복일 수도 있죠. 가난이 죄가 되는 경우는, 가난이 축복이란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만든 자들이, 가난을 죄라고 떠벌일 때, 그 구조 속에 갇힌 가난한 자들이 진짜로 가난은 죄라는 착각을 할 때뿐입니다.


오늘은 상당히 혼란스런 얘기를 한 것 같네요. 걍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무아의 경지” 이것 하나만 항상 마음속에 담아 두세요.

모든 분노와 자만과 독선 등 일체의 욕심을 버린 무아를 만드세요.

그럼 님들은 주식게임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실 껍니다.

종교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구요, 모든 것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준비 자세를 취하고 계시란 얘깁니다.

암튼 님들이 이런 마음이 없으면 님들은 절대로 자본의 흐름을 보실 수 없을 겁니다.


좋은 주말 왠지 더 불을 지피고 싶어서 몇 자 더 적어봤습니다.  


출처 : 맞벌이부부 10년 10억 모으기
글쓴이 : CoolCoo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