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귀농시리즈의 한가지로 여러분들이 매일 두어 차례는 먹게 되는 ‘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올 봄 귀농한 시기가 5월이라 볍씨 준비도 안되었었고 벼농사에 대한 지식도 없어서 올해 벼농사를 짓지 말고 그냥 1년은 논을 묵히려고 작정했습니다. 논이건 밭이건 경작을 하지 않고 땅을 잠시 쉬게 해주면 좋긴 하거든요. 그랬더니 이웃 어르신이 펄쩍 뛰시더군요. 자기가 모(벼의 모종)를 어떻게든 구해줄 테니 흉작이 되더라도 꼭 해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벼농사에 대한 자신도 없고, 이 동네 모든 분들께서 하시는 관행농법에 대하여 거부감이 있어서 그리 탐탁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내기 준비 - 그래도 어리버리한 초짜농부를 도와주시려는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서 용기를 내어 모내기 준비의 일환으로 로터리도 치고(땅 뒤엎고 갈기), 소형펌프를 사다가 물 대어서 1차 써레질(평탄작업)도 했습니다. 이 동네에는 로터리를 치는 트랙터나 모내기를 하는 이앙기, 벼 수확하는 콤바인 등의 기계를 가진 분이 전혀 안 계시기 때문에 다른 동네에서 꽤 비싼 비용을 주고 이런 작업을 맡기는데, 우리 논은 그나마도 규모가 너무 작아서 큰 논 작업할 때 묻어가길 기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내기직전 꼭 세심히 해줘야 하는 2차 써레질은 경운기가 없는 제가 직접 가슴장화를 착용하고 논에 들어가서 했습니다. 논일은 밭일과는 다른 차원의 힘든 일이더군요. 그야말로 죽을 똥을 쌌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 겁니다. 아직은 5월의 날씨임에도 1시간도 안 되어서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속옷과 양말까지 젖었습니다. 추가로 논둑의 길게 자란 풀도 낫으로 깎았습니다. 풀약(제초제)을 뿌리던지 예초기를 쓰면 낫질보다야 1/10의 수고도 안되겠습니다만 귀농첫해부터 자연생명농사를 하리라는 결심 때문에 무식한(?) 길을 택한 것입니다.
모내기 - 어찌어찌 거칠게 써레질을 모두 마치고 사흘 후 남들이 모내기 하고 남은 자투리 모를 여기저기서 얻어와서 겨우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남들이 발육상태가 좋은 모를 남겨줄 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감지덕지하며 받아서 속칭 ‘짬뽕벼’를 심은 것이죠. 어찌되었건 모내기를 하고 나니 왠지 가슴이 뿌듯합디다. 면사무소에 가서 농지원부도 신청했습니다. 실제 농사를 짓는다는 일정조건(논밭의 경우 300평 이상 경작 증명)을 갖추어야 발급되는 ‘농지원부’ 라는 게 있어야 농업인의 자격이 되어서 자잘한 지원혜택도 생기거든요.
풀과의 싸움 – 농사일은 80%가 풀과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원치 않는 풀들이 작물보다 더 많이 더 크게 자라므로 모든 농부들은 풀이 끔찍하다고들 하십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개는 파종직전의 논밭에 제초제를 살포해서 이미 자란 풀과 풀씨를 말려 죽입니다만 제초제는 살균살충제인 농약보다도 더욱 땅과 인간에 치명적입니다. 예를 들면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 놓으면 의사가 농약 마셨냐, 제초제 마셨냐를 물어본답니다. 농약이라고 하면 어떻게든 처치를 해보지만, 제초제라고 하면 일찌감치 포기를 해버린답니다. 뿐만 아니라 제초제를 땅에 뿌리면 땅의 색깔부터가 달라집니다 땅속의 미생물과 서식처를 둔 곤충까지 모두 타 죽기 때문에 유기농법은 물론 제가 하려는 자칭 ‘자연생명농법’에도 절대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모내기 직후의 풀 대책으로서 우렁이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논의 풀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故노대통령께서 봉하마을에서 시범실시해서 유명해진 오리농법도 있고, 쌀겨농법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나마 저렴하고 만만한(?) 우렁이농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효과는 반반이었습니다. 아래쪽 다랭이는 심수관리가 잘되어서 물속에서만 살아가는 우렁이가 논바닥의 풀싹을 다 먹어 치웠으나, 더 넓은 윗 다랭이는 물관리를 못하여 우렁이가 말라 죽거나 탈출을 해버려서 피가 잔뜩 나버렸습니다. 덕분에 며칠간 물장화를 신고서 푹푹 빠지는 논에 들어가서 심어놓은 모가 다칠라 조심하면서 수백 개가 넘는 피를 뽑아주었습니다.
다 뽑았으니 이젠 논일이 지겹기도 해서 밀린 밭일에 치중하였는데, 보름쯤 지나자 이웃 어르신이 저를 불러서는 힐책을 하십니다. ‘자네는 농사를 왜 그 모양으로 하는겨?’ 저는 깜짝 놀라서 논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았습니다. 오마이갓! 워낙 벼랑 비슷하게 생겨서 논 바깥에서는 언뜻 보지 못했던지, 벼 사이사이로 피가 한창 자라있었습니다. 논피에 대해서 경험이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참 자란 피 뽑는 일이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벼에 바짝 붙어서 자라는 특성이 있는 피는 뿌리도 깊어서 밑동을 잡고 뽑다가 벌러덩 뒤로 넘어지는 일이 많고, 그걸 움켜쥔 손아귀의 인대가 늘어나서 한동안 젓가락질도 못할 지경이 됩니다. 뽑아낸 피를 둘둘 말아서 다시 논바닥 깊숙히 밟아 묻으면 되는데, 이런 단순작업을 아침마다 매 두어 시간씩 거의 한달 내내 합니다. 한번 할 때마다 엄청난 체력과 수분의 손실이 생겨서 기진맥진한 채 낮잠을 자게 됩니다. 꿀보다 달콤한 낮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피를 다 잡았다 싶으면 물달개비와 알방동사니가 뒤를 따릅니다. 이래가지고는 천 평(밭농사는 500평)이상을 제 방식으로 농사짓기는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됩니다.
병충해를 이겨내라 – 장마 끝 무렵부터 이삭이 다 여물기 까지는 도열병, 문고병, 나방, 벼멸구, 메뚜기 등의 피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병충해는 예방이 최우선인데, 저 같은 경우는 수확량은 줄더라도 농약살포 대신 거름을 주지 않는 법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地力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력증진을 위해서는 추수 후~이듬해 봄까지 기발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벼뿐만 아니라 인간도 그렇고 거의 모든 동식물은 뭔가를 많이 먹게되면 면역이 약해집니다. 실례로서 최근 열심히 따먹고 있는 수박과 참외, 토마토 역시 처음에 밑거름 말고는 추비를 주지 않았음에도 크기는 작아도 얼마나 달고 식감이 좋은지 모릅니다. 물론 병충해도 조금 생기다 말더군요. 운이 좋았지만 녀석들이 자기 힘으로 이겨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벼도 그러할 것으로 믿고 새싹거름이니 이삭거름을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논의 생육상태는 풀약과 농약, 화학비료 등으로 범벅이 된 다른 논에 비해서 전혀 뒤쳐지지 않습니다. 처음엔 모의 상태도 좋지 않은 잡벼 출신인데다가, 저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피와 싸우면서 치열하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커준 것만 해도 저는 100% 만족합니다. 설령 수확량이 1가마도 안될지라도 말입니다. 마을 어르신들도 ‘조금 걱정했는디… 자네 올해 쌀밥 좀 먹겠구먼’ 하시면서 대견해 하십니다.
수확할 때 – 모내기를 늦게 한 논이 아니라면 앞으로 달포 후에는 추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콤바인이 벼를 베어 탈곡을 하고 볏짚까지 잘라서 바닥에 뿌려주니까 편하게 수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콤바인이 들어오기 일주일전에 낫을 들고 논에 들어가서 내년에 농사지을 만한 건강한 볍씨를 골라둘 것입니다.
농약을 쳤건 안쳤건 농부의 입장에서는 모든 작물을 통틀어서 벼 수확 할 때가 가장 보람이 클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랜 역사로 쌀은 우리 민족의 주곡이고 생명유지를 위한 기초식량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거기다가 논이 지구 생태와 환경측면에서도 그렇고, 온갖 생명의 서식지로서 차지하는 그 가치는 한낱 자동차, 반도체, 선박이 가져다 주는 비교할 수도 없지요. 자동차, 핸드폰은 아예 없더라도 조금 불편할 뿐이지만, 쌀은 전 세계적으로 수확량이 10%쯤만 부족하더라도 식량전쟁이 벌어집니다. 어느 인간은 쌀 없으면 빵이랑 고기 사먹으면 되지~라고 합디다만, 적어도 제 글을 읽은 여러분은 ‘마리앙뜨와네뜨’ 같은 멍청이는 없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나라같이 식량 자급률이 26% 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벼를 비롯한 식량작물의 중요성이 커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농촌에서는 해가 갈수록 벼농사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농촌에 와서 보고 겪으며 느낀 바를 적자면, 오래 전부터 우리정부의 정책이 농업, 특히 벼농사에 대하여 일일이 표현하기 힘들만큼의 서자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벼농사 줄더라도 공산품 팔아서 사오면 되지~ 라는 앙뜨와네뜨의 사고 방식이지요. 나름 머리 굴려서 우린 공산품을 많이 만들어내고, 땅덩어리 넓은 나라나 빈곤한 어느 나라는 부지런히 식량을 만들어내면 된다는 ‘글로벌분업정신’인가 봅니다. 인구는 갈수록 늘고 기후변화나 관행농법으로 인한 경작지황폐화로 인하여 머잖아 식량생산량이 줄게 되면 어찌될지 두고 봅시다. 자원도 없고, 식량마저도 부족한 우리나라의 미래가 안타깝습니다. 필자는 이제 어느 정도 식량에 대해서만큼은 자급이 됩니다만, 도시의 여러분들과 금 쪽 같은 2세들은 지금처럼 걱정 없이 배를 채울 수 있을지 과연 궁금합니다.
수확 후 – 벼를 수확하면 곧장 밥솥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탈곡한 낟알을 마른 볕에 잘 말려서 정미소에서 껍질(왕겨, 쌀겨)를 벗겨내어 포장, 운반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농부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가마니를 옮기느라 근력을 써야 하는 줄 모르실 겁니다. 도시에서는 뱃가죽이 식스팩이라고 뻐기는 근육맨들이 어지간한 6~70대 농부들에 비해 순간근력은 좋을지 몰라도 지구력만큼은 게임도 안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쌀을 우리 농부들은 80킬로그램 한 가마에 겨우 12만원~14만원에 팝니다. 한 가마 쌀이면 1명이 일년 내내 먹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귀농 전에도 쌀값이 너무 싸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일년 내내 배를 채워주는 생명의 쌀을 겨우 두어 달 핸드폰 사용요금이면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입니다. 서너 명 가족이 한끼 외식하는데 수십 만원을 쓰고, 자가용 몰고 한나절 놀러 다니느라 이보다 훨씬 더 큰돈을 쓰고, 남들한테 잘 보이느라 낯바닥에 매일 범벅 색칠하는 페인트비용으로는 수백 만원을 쓰면서도 쌀값 비싸다면서 불만인 사람은 배곯다가 굶어 죽어도 쌉니다.
적정 쌀값 - 유기농 쌀 기준으로 한 가마에 100만원, 무농약 쌀은 60만원쯤 되어 도시인이 거리낌없이 그 쌀을 소비해주면 우리모두의 삶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우선 농민이 살고 우리 땅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를 안 쓰면 자연스레 단위면적당 매출이 늘 것이므로, 1헥타르(3천평)를 경작하는 농민들이라면 연간 소득이 2천만원쯤이 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당신들의 고단함은 벗어나기 힘들더라도 자식들의 교육비 걱정은 덜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도시 여러분들 또한 생명력 가득한 쌀을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 먹는 두어 번까지는 다소 껄끄럽겠지만 꽁현미밥(0분도미)을 권합니다. 현미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생선, 야채, 과일에 못지않은 각종 필수영양소와 식이섬유 외에도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가득 들어있어서 다른 고급 반찬이나 보양식, 간식 따위는 필요 없게 되고, 의료비 따위는 1/10 이하로 줄어들 테니, 쌀 값 비싸다는 투정은 쑥 들어갈 것입니다.
이 참에 까놓고 말씀 드리건대, 지금 우리가 자주 찾는 간식이나 술, 담배, 보약이 생명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합니까? 오히려 그런 것들 사느라 돈 들고, 그로 인한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가 또 듭니다. 필요이상의 음식물을 만드느라 돈과 자원이 낭비되고, 먹고 남은 것 처리하느라 비용이 추가로 들면서 지구가 병들어 가지요. 아주 가까이는 북한 인민들을 비롯하여 멀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해마다 어린 생명이 수천만 명씩 굶어 죽는데도 말입니다. 눈멀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빚어내는 끝없는 악순환입니다.
이처럼 도덕과 가치의 전도, 개발만능주의와 재테크에 환장한 작금의 실태는 왜곡된 인본주의사상 때문입니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고,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고, 자연은 인간이 정복하고 수탈하는 대상일 뿐으로 여기는 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모든 생명이 적당히 먹고 자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데 반해, 인간만이 더욱 맛있고 배부르게, 더욱 편리하게, 더욱 자극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면서 다른 생명을 파괴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알고 짓는 죄라면 차라리 구원의 가능성이나 있지, 모르고 짓는 죄는 구원의 가능성조차 희박합니다. 그러므로 벼멸구, 탄저병균, 물고기, 지네, 거미, 지렁이, 무당벌레, 모기, 파리, 각종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을 한낱 미물로 다룬다면, 인간들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그 미물들에게 응징을 당하는 것이 인과응보의 이치에도 맞습니다.
그깟 흔한 쌀농사가 뭐 대단한 거라고 재테크코너에서 고상한 척은 혼자 다 한다고 욕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욕하시는 분은 그 나름의 욕할 자유가 있으니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도 돈이 중요하다고 믿고 싶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를 믿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을 위해서 돈에 앞서서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 생명과 가치의 본질적인 문제를 깨닫고 해결하면 돈 문제도 따라서 저절로 풀어질 거라고 확신하기에, 그러한 일환으로 이번에는 쌀과 농촌과 자연의 고귀함을 한데 엮어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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