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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후재테크 - 부모노릇으로부터의 탈출

Time(천둥새) 2011. 10. 15. 14:56

 지난 번에 제가 귀농한 사연을 말씀 드렸는데, 이에 대하여 댓글이나 이메일 등으로 부러워하시는 분, 어찌 귀농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려달라는 분, 구체적인 농촌생활을 궁금하다는 등등 참 다양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반응은 나도 하고 싶지만 아이들 교육 때문에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라는 변명에 대해서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          난 이런 저런 이유로 귀농을 매우 원하지만 농촌에서는 내 아이들의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이를 악물고 아이들을 위해서 지금 이곳에서 고달픈 삶을 견뎌보련다.

-          귀농에 대한 로망도 있고, 다른 것들도 하고 싶은 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태가 그나마 낫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핑계는 항상 가장 만만한 변명거리로써 써먹기 딱 좋다.

-           

어느 경우에도 부모는 학교교육과 성적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라는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모든 어린 생명은 부모의 재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언행을 모델로 삼아 본능적으로 배우고 익히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아이의 인생은 부모의 솔선수범과 간섭이 아닌관심과 사랑 99% 결정한다고 확신하는데요, 요즘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왜 학교에 떠맡길까요? 왜 부모가 멀쩡히 있는 아이를 부모가 아닌 학교가 사회가 정부가 키워야 할까요? 따라서 자녀의 교육을 부모자신이 아닌 남에게 맡기려고 한다면 대단히 무책임한 부모라고 비판하고 싶습니다.

 

요즘 저 출산 문제 및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각종 출산지원 대책과 학교폭력, 성범죄, 무상급식 등 매일매일 뉴스거리가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부모의 관점에서 혹은 아이들 본인, 3, 정부, 교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각각 자기 입장에서는 할말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각자 뭐라고 주장하고 떠들던지 누가 뭐래도 부정하지 못하는 공통분모는 바로 [동서고금, 국경, 이념, 인종을 불문하고 모든 어린 생명들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최소한의 생존능력을 익히고, 제 때 필요한 만큼은 입고 먹고 쉬게 해주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아닐까요?

필자가 오늘은 이런 맥락에서 독자 여러분들께서 꽤 불편해 할만한 말씀을 전해드릴 작정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자기의 소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기들이 적지 않은 노력으로 낳아서 키웠으니 그런 집착을 하는 것도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당연해 보입니다만, 지금의 그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면 귀농은커녕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삶을 찾지도 못하고, 또 부모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자식들 때문에 전전긍긍 하게 될 테니 그것이 좀 안타깝군요.

 

최근 급격한 출산감소로 인하여 초래될 수십 년 후의 각종 문제를 걱정한 나머지 결연한 각오로써 국가를 위해 자식을 낳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주위사람 눈치 때문에 의무감으로 그냥 낳아본 것인가요? 자식이라는 존재는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부부당사자의 필요 때문에 자기들의 욕심(?)을 위하여 낳은 귀한 생명체이니,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부모 자신들의 무한책임으로 자녀가 자립할 수 있는 시점(18~20)까지는 먹여 키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텐인텐 회원님들은 그렇지 않을 듯 싶긴합니다만, 요즘 부모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도를 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바로 위 만큼만 책임지면 될 것을, 소위 남들(정부와 사회체제)이 만들어낸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12년 코스의 사육장에 감금해두는 짓까지도 서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력만 하면 자기 책임으로도 얼마든지 자립할 수 있는 성년이 되었음에도 부모들이 대신 책임을 지고 대학졸업과, 취업, 결혼, 주택 문제까지도 간섭을 합니다. 이런 미련한 집착 속에 갇혀있음에도 갇혀있는 줄도 모르고 있으니,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들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인생 헛 살았다는 후회만 하다가 눈을 감습니다.

 

내 것인 자식을 좀더 돋보이려고 큰 돈 들여 사교육 시켜서 우수한 성적표 가져오거나 좋은 대학가면 우쭐하고, 다치거나 좀 아프면 울고불고, 가출하거나 반항한다면서 열받고오로지 자식들에 의해 희로애락이 결정됩니다. 필자가 쓰던 표현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자식의 노예로 사는 것이지요.

도무지 부모의 인생은 자식에 대해서는 자유도 없고 당당함도 없습니다. ‘너를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자식을 원수로 삼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봅니다. 이것의 원인은 자식은 내 것이라는 탐욕과, 인생은 일정한 틀 안에서 살아야 한다 라는 어리석음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을 특정 부모의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객관적인 생명체로 봐야 합니다. 그렇게 바라볼 수 만 있다면 자식이 성적이 좋건 나쁘건, 땡땡이를 치건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대학교를 보낼 필요도 없게 됩니다. 가령 귀농지 가까운 곳에 괜찮은 제도권 학교가 있더라도 홈스쿨이나 대안학교를 통한 교육도 훌륭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대학진학여부와는 상관없이 성년이 되면 완전히 손 떼고 남의 자식 보듯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앞으로는 우리 인생 알아서 할 테니, 너도 네 인생 알아서 살아라~고 하면서 내쫓아 버리는 것도 권장할 만 합니다. 이것이 부모도 자유로워지고 자녀들도 독립적으로 자기 재능대로 제 인생을 살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는 길입니다. 인간만 빼고는 모든 동물이 그러합니다. 문명으로 무장한 인간이 자기들 탐욕으로 다른 생명계를 살육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이 그러한 자연순환의 질서 안에서 잘 먹고 잘살아왔지 않습니까?

 

물론 자식이 일자무식이 되도록 방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방치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아이들이 최소한의 온전한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먹여주라는 뜻일 뿐 그 이상도 아닙니다. 그 후에 여력이 있거들랑 온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한번이라도 해보시면 그것이 엄청나게 더 큰 보람과 공덕이 됨을 아시게 됩니다. 자식들 먹고 살만하게 잘 키워놨다고 해서, 또는 절, 교회에 많은 돈 기부한다고 해서 천국에 가지는 않습니다. 제가 언젠가 염라대왕님께 질의하여 받아낸 확실한 답변입니다. 죽어가는 생명 살리고, 약한 생명 돌봐주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면 좋은 곳에 보내준다고 약속하십디다.

 

대단히 어리석은 요즘 부모들은 관심과 간섭을 구분할 능력도 없는가 봅니다. 아직 자립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항상 지켜보다가 꼭 필요한 것을 뒤에서 도와주는 것은 관심이고, 부모가 자기가 이끄는 로드맵대로 가도록 아이들이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간섭이 되지요. 둘 사이의 구분이 애매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 자식을 객관적인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면 상호간의 차이는 분명해집니다.

 

이처럼 부모 된 자는 내 자식은 내 것이라는 틀을 벗어 던지고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어느 생명체 라는 틀로 바꿔 쓴다면 안보이던 것이 새로 보입니다. 온 세상의 아이들이 내 것이 됩니다. 어렵게 낳은 자식이 하필이면 선천성장애아라도 상관없어집니다. 3세계와 북한의 아프고 굶는 아이들, 길거리에서 위험에 처해있는 아이들도 내 자식이 되었는데, 이를 방치해둘 부모가 있을까요? 학교에서 친구나 선생님에게 한참 얻어터지고 왔더라도, 자식이 어쩌다가 팔다리가 부러지건 전교성적 꼴찌를 하건, 심지어는 기껏 키워놨더니 사고로 죽더라도 상당히 담담해질 수 있습니다.

 

때가 되어 독립시켜 놓으면 부모는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그래도 그 동안은 신경 써가며 가르치고 먹여야 했던 책임성마저도 없어지기 때문에 좀 늦었지만 무엇이든지 부부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여유롭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바뀌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꿈에도 간구하던 노후재테크 아닌가요?

 

인간은 속박과 책임성이 없어질 때 자유로워질 수 있고, 누구로부터도 자유롭고 무엇으로부터도 걸림이 없어질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쾌락이 곧 행복이 아니라, ‘번뇌가 없어짐이 곧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되신다면 여러분은 이미 구원(=해탈, 득도)의 문을 노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많은 분들이 필자의 귀농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녀교육을 변명하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필자는 측은한 마음마저 듭니다. ‘어쩌면 저리도 어리석을꼬~ 쯧쯧…’ 저 같은 일개 촌부로부터 동정을 받는 기분이 좀 더럽지요? 저도 누군가로부터 동정이나 무시를 받으면 적어도 유쾌하지는 않겠네요.

 

필자는 점점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부러워하거나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없어집디다. (다만 누구보다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다간 석가, 소크라테스, 그리스도는 매우 부럽습니다.) 부러울 만한 것이 없으니, 다만 제가 하고자 할 일을 골라할 뿐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면 그때그때 형편에 맞춰서 처신할 따름입니다.

 

세속에서 살면서도 세속적이지 못한 선택(귀농)을 한 대가를 치르느라 훗날 굶어 죽게 되더라도 지금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만 하겠다 라는 마음뿐입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유언장도 써둘 것입니다. 1만원이라도 유산이 남아있거든 전부 굶거나 문맹인 아이들을 위해서 써달라는 내용으로요. 내 자식은 내 것이 아니므로 물려줄 유산도 없는 것이지요. 세속적인 방식대로 자식들에게 남겨 줘봤자 자식들의 자립에 도움이 될까요? 또 하나의 화근을 남기는 어리석은 짓이지요.

 

세상에는 딱 정해진 채로 불변하는 것이 없고, 따라서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영원할 만한 내 것이 단 한 개라도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저 살아 숨쉬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 다같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추구하여 산다면 이곳이 극락이요 천국이겠지요.

…………

 

요즘 우리 논에는 피와 알방동사니, 물달개비가 한창 자라서 그거 치워내느라 매우 힘이 듭니다. 아침에 현미밥 든든히 먹고 서너 시간 정도만 그 일을 하노라면 약 2킬로의 체중(수분)이 빠집니다. 덕분에 아내는 매일 엄청난 양의 냉보리차를 조제하느라 바쁘답니다. 논의 풀들을 잘 먹어 치운다고 해서 2만원이나 주고 구해다가 모내기 직후에 방생한 왕우렁이 녀석들은 큰 비가 두어 번 내리자 죄다 탈출해버렸습니다. “고얀 녀석들... 잘 먹고 잘살아라…”

 

그래도 이 마을에는 우리 논밭에서만 온갖 생명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습니다. 해질 녘이 되면 개구리와 온갖 벌레, 새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마을어르신들도 제가 논에서 풀 매는 모습과 새와 벌레를 보시면서 옛날 생각이 나신답니다.

 

작은 밭에서는 전에 조금씩 심어둔 옥수수랑 고구마, , 수박, 대파, 열무, 참외, 양배추, 고추가 쇠비름, 명아주, 바랭이, 개여뀌 등의 풀과 함께 뒤섞여서 한창 자라고 있습니다. 제초제나 살충살균제를 한번도 안쳐줘도 아직까지도 잘 견뎌내고 이만큼이나 자라준 논밭의 녀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제가 해준 일이라곤 그저 이 녀석들 잘 크라고 심을 때 제가 만든 천연밑거름 넉넉히 주고, 항상 지켜 보아주면서 혹시 폭우에 휩쓸릴라 물길 깊이 만들고 큰 풀 잡아주는 정도뿐이었습니다. 그전에는 농산물을 먹으면서 키워준 농부들에게 감사했었는데, 제가 농부가 되고 나니 거친 환경 속에서 고유의 생명력만으로도 제 생긴 모습대로 씩씩하게 잘 자라준 농작물들에게 더욱 감사하게 되더군요.

 

녀석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싶어 내일은 지난 두 달 동안 잘 모아서 발효시킨 제 오줌을 물에 희석해서 웃거름으로 주렵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서 먹기는 께름칙한 막걸리도 액비로 줄까 하는데 과연 이 녀석들도 인간들처럼 알딸딸~해 질까요? 어떻게 할까요? 주지 말까요?

 

아무쪼록 산과 강과 들의 모든 생명들이 탐욕스러운 인간들에 의해 살해되지 않고 제 만큼이라도 잘 살다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출처 : 텐인텐[10년 10억 만들기]
글쓴이 : peterp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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