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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관리의 삼성'은 살아 있었던 것일까?
삼성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임원 중심의 조직문화에 반기를 들었던 '삼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삼역모)이 지난 1월 중순께 활동 근거지였던 인터넷 카페를 폐쇄하고 공식활동을 중단했다.
무노조 삼성의 내부 견제세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삼성 과장들의 반란이 공식결성 6개월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갑작스런 삼역모의 해체는 과거 회사 측의 회유·압력 등으로 실패한 노조설립 시도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에 따라 무노조 삼성의 신화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카페에 퍼온 글 때문에 해체?... "조직원 보호 위한 고육지책"
지난해 4월 천안에서 열린 첫 모임을 시작으로 공식결성(2007년 7월)된 삼역모는 해체하기 전 핵심 활동가만 40여 명에 이르렀고, 삼역모 인터넷 카페에서도 100여 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계기로 삼역모의 조직세는 더욱 확대됐다. 비슷한 시기에 대표(1명)와 부대표(2명), 지역별 대표(11명)를 뽑는 등 조직 정비까지 마쳐 삼성 측을 긴장케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오마이뉴스>와의 단독 인터뷰(<구사대였던 우리가 삼성에 반기 든 까닭>)에서 "삼성의 '삼역모 해체' 작업은 성공할 수 없다"며 조직유지에 자신감을 보였던 삼역모 지도부는 결국 반년 만에 스스로 깃발을 내렸다.
그렇다면 최종 목표로 '노조 건설'까지 검토했던 삼역모가 왜 해체의 수순을 밟은 것일까?
삼역모 전 대표 등에 따르면, 삼역모의 활동 근거지였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 삼역모 해체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글은 지난 2001년 삼성SDI 측이 노조 설립을 시도하던 울산공장 노동자들을 납치·감금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었다. 한 회원이 이미 작성돼 돌아다니던 것을 카페에 옮겨 놓은 것이었지만, 여기에 간부들의 실명이 거론돼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삼성SDI 고위 간부가 이 글에 비판 댓글을 남긴 삼역모 회원 3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와 함께 한 삼성전자 한 부장급 간부도 내부게시판('싱글')에 글을 올린 삼역모 회원 1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삼역모를 압박했다.
삼역모 대표를 지낸 J씨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삼역모 해체 배경과 관련 "(명예훼손 소송으로) 벌금형을 받으면 회사규정에 의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해고까지 당할 수 있다"며 "해고되면 법정투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본인들에게 엄청난 타격이 되기 때문에 회사와 좋게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삼역모를 해체하려고 하는 시점에 (명예훼손 건을) 그냥 두겠느냐"며 "삼역모 해산은 대표로서 조직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소를 당한 회원들이 처음에는 법정까지 가겠다고 강경하게 나온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징계를 당하고 회사 밖에서 법정투쟁을 하는 것은 본인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본인들도 좋은 쪽으로 해결하자는 의견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고소를 당한 한 B(삼성SDI)씨는 "사실 크게 문제 되는 글은 아니었는데 직장생활 하면서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며 "이 건과 관련 몇 명이 모여 논의한 끝에 카페를 폐쇄하고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고 이상을 받아야 해고사유인데 이 건은 벌금이나 집행유예 정도"라며 "하지만 회사에서 이걸 호재로 생각하고 걸고넘어져 어쩔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동안 삼역모 지도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김갑수 삼성해복투 위원장은 "고소가 들어오자 삼역모 대표가 나서서 카페 폐쇄와 고소 취하 등을 핵심내용으로 회사 측과 합의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며 "회사 측에서 (고소를 당한 회원에게) 시말서도 요구하니까 삼역모 측에서 많이 위축됐다"고 전했다.
'삼성 개입설'도 제기... 한 간부 "고소자가 독자적으로 했다고 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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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등 회사 측은 삼역모 회원들을 고소한 간부들을 설득해 오는 29일까지 고소를 취하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 안에서 조직세를 확대하며 목소리를 높여가던 삼역모가 단순고소사건 때문에 '자진해체'했다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는 삼역모라는 세력에 부담감을 느끼던 삼성 측의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회사 측이 여러 가지 회유·압력을 통해 삼역모 해체를 시도해왔다는 점에서 '개입설'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삼역모 대표는 지난해 11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역모를 해체하려는 회사측의 방해공작이 엄청나다"라며 "삼역모가 확대될 기미를 보이니까 그룹차원에서 잠재우기 위해 개인적으로 만나 '구조조정은 없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유혹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고소사건을 잘 아는 삼성SDI의 한 과장은 "많은 사람들은 고소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고소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인이 고소한 것이지만 그 개인과 회사가 (명예훼손 고소사건을) 공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 측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써준 사실은 없다"며 "다만 회사 측의 최고위 인사가 삼역모 대표에게 '같은 남자끼리 믿고 깨끗하게 끝내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그 인사가 대표하고 했던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김갑수 위원장은 "삼성이 삼역모를 굴복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소당한 회원들은 오히려 강하게 나갔다"며 "그런데도 삼역모 대표 등은 나중에 가족들의 압박을 근거로 회사측의 고소취하 등을 조건으로 삼역모 해체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 측은 처음에 기존 업무를 안주면서 삼역모 측을 코너로 몰다가 나중에 다시 업무를 주는 등 안정적으로 그들을 관리해왔다"며 "그런데도 모임이 활성화되고 언론보도가 나오니까 고소사건을 계기로 삼역모의 핵심인 대표와 카페지기를 설득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삼역모 초창기 때 카페지기로 맹활약한 L씨가 전화번호까지 바꾸며 종적을 감춘 점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 삼역모 측이 "지난해 말 스스로 명예퇴직을 하면서 카페지기를 그만두었다"고 해명했지만, L씨가 삼역모 안에서 '노조 건설'까지 제기했던 강경파였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와 관련, 삼역모에서 활동한 한 중간간부는 "조건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회유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갑수 위원장도 "지난해 말 삼역모 송년회 전날 사라졌는데 나중에 나한테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얘기하더라"며 "L씨는 회사 측의 회유에 넘어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전 대표 "회사 사주설 사실 아니다... 삼역모 재건은 없다"
하지만 삼역모 전 대표인 J씨는 '개입설', '매수 의혹' 등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밖에 있는 제3자들이 회사에서 사주했다고 얘기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내가 중국 주재원으로 간다는 얘기도 헛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원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카페 폐쇄와 고소 취하에 합의했다"며 "고소당한 사람들의 피해와 희생을 막기 위해 삼역모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거듭 해명했다.
특히 J씨는 "앞으로 삼역모의 재건은 없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회사 측에서 삼역모 같은 조직이 만들어지는 환경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구조조정도 하지 않고, 조직문화도 바꾸는 등 삼역모에서 제기한 문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경영진들이 (삼역모의 활동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사전에 배려하고 신바람나는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삼역모의 핵심현장이었던 삼성SDI 측은 창립기념일인 5월에 새로운 인사정책, 조직문화 등이 담긴 방안을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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