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꺼야..
왠만해서는 TV를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지난주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다가 문득 "7080"인가요?
배철수씨가 나와서 진행하는 가요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오래간만에 조덕배님을 만날수가 있었습니다.
조덕배님은 제가 학창시절 좋아했던 가수였거든요
그 분이 부르신 노래중에서 "슬픈노래는 부르지 않을꺼야"라는 노래에 사연이 있는데
그 날 조덕배님께서 슬픈노래는 부르지 않을꺼야 라는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아시다시피 전 어렸을 때 부터 가난이라는 단어와 늘 친구처럼 살았습니다.
과자를 먹고 싶어도 집에서 과자 사먹을 돈이 없었습니다.
부자 친구네 집에 가서 제과점 과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먹어 본 이후
이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과자가 있었구나를 처음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저에게서 과자는 말 그대로 사치였습니다.
아니 그 당시에 사치라는 표현보다는 절대적 동경일 뿐이었죠
무슨 돈이 있어서 사치를 하겠습니까?
그냥 가난뱅이의 아들이 생각하는 동경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도 제과점에서 과자를 사노라면 옛날생각이 납니다.
가난에 대한 아픈 추억을 땔래야 땔 수 없는 화상을 입은 상처인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친구들은 가난한 집안의 친구들을 사귑니다.
절대적 부정인가요? 하하하
유유상종 (類類相從) 이라고 뭐는 뭐끼리 만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학창시절 때 저의 친구들은 다 가난한 집안의 친구들이었죠.
한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그 당시만 하여도 야간자율학습이라고 해서 무조건 10시 30분까지는 학교에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저랑 친한 친구녀석이 저녁을 먹고나서 갑자기 야간자습을 하지 말고 도망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왜 도망가자고? 뭔 이유가 있냐?"
"응 우리 어머니...... 일본으로 도망가셨다..."
"................."
"우리 어머니.....
일본에서 돈 많이 벌어 오신다고 하면서 아침에 편지 남기시고 일본으로 가셨다.
지금까지는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녁이 되니까 모든 것이 싫어진다.
그냥 나가서 소주한잔 먹자 종찬아...."
"........................."
"........................"
"..가자 소주먹으러... "
이렇게 해서 저와 저의 친구는 1층 교무실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그 당시에는 건물 출입문을 폐쇄시켰으므로 건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1층 교무실을 통해서 건물 출입문으로 갈수 있었거든요 )
2학년 건물을 빠져나와 학교 담을 뛰어 넘어
우리는 월권인 자유를 누렸습니다.
대전천을 벗삼아 새우깡에 소주한잔 마시면서 그 친구의 가족사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어느듯 친구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하더군요....
저두 친구의 아픈 사연을 듣고 코 끝이 찡~~했죠..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 짜식아 그래도 넌 행복한거야...
난 어릴 때 너보다 더 심하게 살아왔어...
그래도 넌 엄마, 아빠라는 가정의 테두리에서 살았지만,
난 그런 테두리에서도 살아 보지 못했어.
그래도 넌 도망갈 엄마라도 있으니까 행복한거고.
그래도 넌 아버지가 집에 계시니까 행복한거야....."
"그래 너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하지만 너무 맘이 아프다....."
그 넘의 돈이 뭔지...
돈이라는 넘은 늘~ 서민들에게 시련과 눈물과 아픔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구요?
네 잊혀지겠죠. 하지만 그 돈없어서 겪는 상처는 아물 뿐이지만,
그 흔적은 영원히 남아있죠.
친구의 눈물썩인 사연을 다 듣어주고 우리는 대전시내에 있는 음악감상실
( 그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자주 가든 곳. 한쪽에서는 커피숍처럼 커피를 마시고, 작은 출입문을 통하면
라이브나 영하를 틀어주는 공간이 있었죠. 자석은 대략적으로 40석 규모)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라이브
공연장으로 들어 갔습니다.
한참동안 음악DJ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있는데 옆에 친구가 조용한 겁니다.
그래서 옆을 쳐다보니까...친구녀석은 조용히 눈을 감고 울고 있더군요.... ㅜ.ㅜ;;;
이윽고 DJ 가노래하시고 싶은 분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충청도 분들 특징이 대중앞에 서는 것을 상당히 꺼려 하죠.
아무도 안 나오기에 DJ는 앞으로 나오시는 분에게는 연극 티켓을 두장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한참동안 가만이 있다가 문득
"이 친구를 위해서 내가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사실 노래도 못하거든요.
하지만 친구녀석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앞으로 무작정 나가게 되었습니다.
DJ가 대학생이냐구 물어 보기에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 상당히 뻔뻔하죠 ㅎㅎㅎ)
그리고는 어떤 노래를 하고 싶냐고 하기에
DJ의 마이크를 뺏고 제 친구녀석을 위하여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은 감당할 아픔도 있고, 때로는 감당하지 못할 아픔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전 친구랑 같이 왔습니다.
지금 제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전 노래를 할 줄 모르지만 제 친구녀석을 위하여 힘내라는 의미에서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 이라는 시를 낭송해 주고 싶습니다."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 오리라~~~~~~`
이윽고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이 때 DJ는
"정말 좋은 친구분을 두셨군요. 친구분도 계시면 나오시죠"
이렇게해서 대학생들, 연인들 앞에서 고삐리 두명이 그 무대를 장악하게 된것이지요.
"정말 좋은 친구분을 두셨는데 우리 이 친구분에게 할 얘기는 ?"
"이 친구는 문학을 꿈꾸는 친구이고 전 음악을 꿈꾸는 친구입니다.
전 이 친구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노래 제목은?"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꺼야입니다."
이렇게 울고 있는 친구랑 전 어깨동무를 하고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슴에 몸부림 치는 추억도 가슴에~~
그 자리에 많은 분들이 노래를 마친 저희들에게 축복의 박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짝짝짝
이 친구녀석은 현재 LG전자 본사에 근무를 합니다.
대전에 일년에 한두번정도 내려오는데 내려 올때마다 같이 만납니다.
그리고 술집에 가서 이 노래를 항상 부릅니다.
물론 어깨동무도 같이 하구요.....
단, 항상 제가 술값 수십만원을 계산한다는 점이 지금에 와서는 못 마땅합니다. 케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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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1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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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은 그 사무실을 안 찾아갔습니다.
아니 안 찾아간 것이 아니라 찾아갈 용기가 안났습니다.
그런 후 3일째 되는 날
전 또 다시 이성사무장님을 만나뵙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저에게는 자존심 보다는 일을 더 배우기 위한 열정이 더 높았기 때문이죠.
이것 아니면 안되는데
그까짓 자존심 부릴 때 부려야지 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저 사무장님 그 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ㅡ.ㅡ"
"어? 배종찬이 또 왔어? 하하 이 새끼이거 배짱 좋은데?"
".........(이거 뭘 어떻게 하는거야?).........."
그날 이후로 저의 퇴근시간은 더 늦게 되었습니다.
사무실에서 6시에 마치면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 법률실무를 익히고
8시경부터 스승님 사무실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법률사무소 연수생이 되어 가지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따지거나
일을 마다할 처지가 안되었기 때문에
제가 스승님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는게 배움의 보답을 하는 일이라고는 전 생각하였습니다.
스승님과 스승님의 직속 제자 그리고 저 이렇게 3명이서 일처리를 해도 보통 12시에 스승님
일이 끝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날은 새벽 5시에 겨우 일을 마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새벽에 우리 스승님 말씀
"야 피곤하니까 포장마차가서 소주한잔 먹고 가자 !!"
" 넵 ㅜ.ㅜ" (속에서는 스승님 저 오늘 출근 7시에 하는 데요......입안에서 맴돌 뿐이었습니다.)
소주한잔 먹고 아파트에 정문에 도착하니까 오전 6시 30분 이더군요
저는 가방들고 집으로 가는 중인데 일찍 일어나시는 분들은 운동하러 나오시더군요.
집에 가서 대충 옷갈아입고 씻고 다시 출근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일을 하면 피곤할 텐데 저에게는 피곤함을 몰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밤샘을 하여도 그 다음날 피곤하지 않습니다.
몸은 비록 피곤할지 몰라도
저의 정신세계에서는 몸의 피곤함은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죠
없는 사람들은,
성공을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피곤함을 몸에 달고 삽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방 세상일을 혼자 다 한듯한 착가에 빠지죠
때때로 본인이 왜 피곤한지도 모르면서 피곤함을 느낌입니다. (그쵸? ㅎㅎ)
이러한 피곤함은 목표가 없는 사람들의 피곤함입니다.
큰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기 때문에
피곤할 여력조차 없습니다.
큰 목표든, 작은 목표든 목표가 없기 때문에 서민들이 힘든 것이지요.
첫 월급을 타기전에 전 목표가 굳건하였습니다.
큰 목표는 무진장 돈을 벌겠다.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쓰겠다. !!!!
작은 목표는 그 당시 저의 스승님이신 이성사무장님을 따라잡겠다.
이성 사무장님의 연봉이 일억오천만원 이었거든요
(그 당시의 월금으로 따지면 월 1200만원 정도였으므로 왠만한 변호사급 수준이었죠)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정말 죽을 각오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피곤했냐고요?
천만해요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처럼 행복한 시기가 없었다. 라고 생각듭니다.
이제 작은 목표라도 설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올해까지는 반드시 절약해서 100만원을 모으겠다.
내년까지는 반드시 절약해서 1000만원을 모으겠다.
빚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까지 반드시 돈을 갚고 말겠다.
목표없는 사람들은 목표있는 사람들의 하수인 밖에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오늘도 진일보 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작심삼일 일년에 백번만 하세요.
그러면 알게 모르게 달라진 자신을 찾을수 있게 됩니다.
진정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노력을 위하여 거대한 목표를 지니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저의 목표는 일단 100억입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가지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꿈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꿈이 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꿈없는 삶은 재미없는 삶입니다.
항상 잘 된 사람들을 동경만하고
항상 없는 사람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런 종류의 사람 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하긴 지금의 현실에서 꿈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는 않죠.
다 생각한다고 이루어지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역으로 생각한다면,
꿈이 없으니까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한세상 다 버릴실 생각이면 어쩔수 없구요.
아무리 어렵다. 힘들다 라고 하여도
결국 있는 사람들에게는 요즘같은 기회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없는 사람의 대열에 있다면
꿈을 크게 잡지 마시고 그냥 있는 사람, 즉 부자가 되겠다.
라는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얼마큼 벌어야 부자이냐의 문제는 각 개인이 지닌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자신이 달성가능한 금액부터 지정을 하시고 그 금액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꿈은 결코 멀리있는 이상덩어리가 아닙니다.
꿈은 내가 찾고자 한다면,
꾸은 내가 가지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따 먹을수 있는 감나무의 감하고 똑같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지지 못할 뿐입니다.
난 반드시 가지고 말겠다
난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
라는 꿈이 생기면 감나무의 감을 딸 배짱도 생기고
감을 따기위해 이웃집에서 장대나무를 빌릴 수 있는 뻔뻔함이 생기고
그 장대나무로 냅다 감나무를 쳐서 감을 따 먹을 수가 있는 꼬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만히 누워서 언제 감이 떨어지나 기다리는 순간,
그 감은 누군가가 따 가고 맙니다.
또한 운좋게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진다고 하여도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않는 이상
감이 입에 떨어질 우연성은 높지 않습니다.
감이 떨어져도 얼굴이나 눈에 떨어진다면,
결국 감을 먹어 보지도 못하고 얼굴이나 옷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죠
"재수가 없으니까....
조상탓이니까......"
그것은 자신의 과오를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가난뱅이들의 오래된 습관일 뿐입니다.
왜 남을 탓합니까?
다른 사람이 님들한테 잘못한게 뭐가 있습니까?
님들이 준비안했기 때문에 재수가 없는 것입니다.
준비된 자들에게는 언제나 상큼하고 우연치고는 묘하게 기분좋은 일만 펑펑 생길 뿐입니다.
===========================================================================
받는 만큼만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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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지 채 한달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아침 7시 출근, 새벽에 퇴근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까
법원계통에서 전 "싸이코"라는 별명이 붙었죠.
한번은 다른 변호사 사무실 친구에게 물어 볼것이 있어서
그 친구네 사무실에 갔는데 그 친구 왈
"야 종찬아 니 그렇게 일한다고 변호사가 월급 많이 준다던?"
"................."
"그렇게 일해봤자 변호사들 좋은 일만 해주는 거야.
넌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데...너만 열나 고생하고 마는거야. 좀 눈치껏 살아라"
참...
할 말이 없더군요.
무어라 막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일단 저보다 먼저 들어온 친구고..
저보다 아는 것도 많으니까 전 더 배워야하니까...등등
그래서 전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야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돈을 떠나서 내가 할 일인데 내가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 아냐"
"야 임마. 그게 살다보면 안된다니까....
누가 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 알아주냐?
그렇다고 월급을 팍팍 올려줄 것 같애?
그냥 고생하지말고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
속된말로 니 아니고서도 사무실을 돌아가잖아."
"............................."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라...
그렇다면 저의 초봉이 45만원인데....
45만원어치 일이 어디에 있는지? ㅡ.ㅡ;;;
좀 난감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너무나 답답하다고 생각들었습니다.
삶을 왜 그렇게 살아갈까?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치열하게 화끈하게, 멋있게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라~~ 이런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하기는 싶겠다.
내 비록 초봉 45만원짜리 인생이지만, 이런 친구들 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이 친구보다 더 성공하고 말겠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취업 안된다. 취업하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필리핀. 인도네시아등에서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작은 일에 성공하지 못한 자는
큰일을 성공하지 못합니다.
작은 것에서 만족감을 얻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큰 일이 그냥 나에게 떨어지지는 않는 법이지요.
서양의 일화중
두명의 도랑파는 철도직원이 있었는데
신입직원이 나이가 많으신 고참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저 선배님 어제 회장님과 선배님이 같은 차에서 내리시든데 어떻게 된 일이죠?"
"응 회장님과 난 한달에 한번정도 식사를 같이 한다네...."
"와우 우리 회장님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회장님이 선배님과 같은 분과 식사를 같이 하죠?"
"........................."
"아니 어떻게 회장님께서. 선배님과 같이 식사를...이유도 없나요? 참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 내가 회장님과 한달에 한번 정도 식사를 하는 이유는...
그 회장님과 난 30년전에 이곳에서 같이 도랑파는 일을 했기 때문이지....
그 사람은 처음부터 회사를 위하여 열심히 일을 했고,
난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을 했거든........"
꼭 서양의 일화를 들지 않더라고,
현재 지금도 그 변호사 사무실 친구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전재산은 5천만원도 안 됩니다.
전 그 친구의 자산보다 10배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게 바로, 받은 만큼 일한다 라는 마음과
내가 한 만큼 많은 돈을 벌겠다 라는 마음과의 차이가
10년후에는 이렇게 많은 차이가 발생되더군요.
앞으로 5년 안으로 20배의 차이가 나지 않을까요?
초봉 45만원이지만, 제 머릿속에는 엄청난 부자의 꿈이 있었습니다.
일하다가 죽는게 나의 소원이다
싶은 마음으로 죽을 각오로 일을 하였습니다.
일이든, 부동산투자든, 주식투자든 대한민국에서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무엇이든지 연구를 하였으며
공부도 하였습니다.
제 나이 27살에 충북 청주시 하복대지구내 대원아파트 상가를 분양 받으려 돌아다녔고
분양을 받지 못하자 프리미움을 주고 1층 상가를 구입하여 부동산도 차려 보았습니다.
물론 청주것 매수하기 이전에 대전 유성구에 부동산을 부업으로 차렸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7살 때 였거든요.
물론 공인중개사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부동산사장이었죠.
(일년만에 청주는 권리금 1500만원 받아 먹고 넘겼구요,
대전 유성구 쪽은 1000만원정도 손해보고 넘겼습니다.)
부동산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크게 배웠습니다. ㅎㅎ
제 나이 27살 때 나이드신 분들에게서 사장님 소리 듣으면서 부동산까지 경영하는
경영자가 되었든 것이지요.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나이는 어렸지만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안되는 공인중개사가 있었고 아줌마가 있었든 반면에
청주의 부동산은 동갑내기 공인중개사에게 월급을 주며 일을 위임시켯는데 그 친구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할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부동산을 처분하였지만 그것이 다 자기 하기 나름인것이지요.
이제부터 받는 만큼 일한다는 생각을 하수구에 버리시구
열심히 일한 만큼 벌겠다
라는 마음으로 열심히..무엇이든지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하늘은 속일수가 있어도
여러분들 자신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왠만해서는 TV를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지난주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다가 문득 "7080"인가요?
배철수씨가 나와서 진행하는 가요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오래간만에 조덕배님을 만날수가 있었습니다.
조덕배님은 제가 학창시절 좋아했던 가수였거든요
그 분이 부르신 노래중에서 "슬픈노래는 부르지 않을꺼야"라는 노래에 사연이 있는데
그 날 조덕배님께서 슬픈노래는 부르지 않을꺼야 라는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아시다시피 전 어렸을 때 부터 가난이라는 단어와 늘 친구처럼 살았습니다.
과자를 먹고 싶어도 집에서 과자 사먹을 돈이 없었습니다.
부자 친구네 집에 가서 제과점 과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먹어 본 이후
이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과자가 있었구나를 처음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저에게서 과자는 말 그대로 사치였습니다.
아니 그 당시에 사치라는 표현보다는 절대적 동경일 뿐이었죠
무슨 돈이 있어서 사치를 하겠습니까?
그냥 가난뱅이의 아들이 생각하는 동경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도 제과점에서 과자를 사노라면 옛날생각이 납니다.
가난에 대한 아픈 추억을 땔래야 땔 수 없는 화상을 입은 상처인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친구들은 가난한 집안의 친구들을 사귑니다.
절대적 부정인가요? 하하하
유유상종 (類類相從) 이라고 뭐는 뭐끼리 만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학창시절 때 저의 친구들은 다 가난한 집안의 친구들이었죠.
한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그 당시만 하여도 야간자율학습이라고 해서 무조건 10시 30분까지는 학교에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저랑 친한 친구녀석이 저녁을 먹고나서 갑자기 야간자습을 하지 말고 도망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왜 도망가자고? 뭔 이유가 있냐?"
"응 우리 어머니...... 일본으로 도망가셨다..."
"................."
"우리 어머니.....
일본에서 돈 많이 벌어 오신다고 하면서 아침에 편지 남기시고 일본으로 가셨다.
지금까지는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녁이 되니까 모든 것이 싫어진다.
그냥 나가서 소주한잔 먹자 종찬아...."
"........................."
"........................"
"..가자 소주먹으러... "
이렇게 해서 저와 저의 친구는 1층 교무실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그 당시에는 건물 출입문을 폐쇄시켰으므로 건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1층 교무실을 통해서 건물 출입문으로 갈수 있었거든요 )
2학년 건물을 빠져나와 학교 담을 뛰어 넘어
우리는 월권인 자유를 누렸습니다.
대전천을 벗삼아 새우깡에 소주한잔 마시면서 그 친구의 가족사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어느듯 친구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하더군요....
저두 친구의 아픈 사연을 듣고 코 끝이 찡~~했죠..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 짜식아 그래도 넌 행복한거야...
난 어릴 때 너보다 더 심하게 살아왔어...
그래도 넌 엄마, 아빠라는 가정의 테두리에서 살았지만,
난 그런 테두리에서도 살아 보지 못했어.
그래도 넌 도망갈 엄마라도 있으니까 행복한거고.
그래도 넌 아버지가 집에 계시니까 행복한거야....."
"그래 너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하지만 너무 맘이 아프다....."
그 넘의 돈이 뭔지...
돈이라는 넘은 늘~ 서민들에게 시련과 눈물과 아픔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구요?
네 잊혀지겠죠. 하지만 그 돈없어서 겪는 상처는 아물 뿐이지만,
그 흔적은 영원히 남아있죠.
친구의 눈물썩인 사연을 다 듣어주고 우리는 대전시내에 있는 음악감상실
( 그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자주 가든 곳. 한쪽에서는 커피숍처럼 커피를 마시고, 작은 출입문을 통하면
라이브나 영하를 틀어주는 공간이 있었죠. 자석은 대략적으로 40석 규모)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라이브
공연장으로 들어 갔습니다.
한참동안 음악DJ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있는데 옆에 친구가 조용한 겁니다.
그래서 옆을 쳐다보니까...친구녀석은 조용히 눈을 감고 울고 있더군요.... ㅜ.ㅜ;;;
이윽고 DJ 가노래하시고 싶은 분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충청도 분들 특징이 대중앞에 서는 것을 상당히 꺼려 하죠.
아무도 안 나오기에 DJ는 앞으로 나오시는 분에게는 연극 티켓을 두장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한참동안 가만이 있다가 문득
"이 친구를 위해서 내가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사실 노래도 못하거든요.
하지만 친구녀석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앞으로 무작정 나가게 되었습니다.
DJ가 대학생이냐구 물어 보기에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 상당히 뻔뻔하죠 ㅎㅎㅎ)
그리고는 어떤 노래를 하고 싶냐고 하기에
DJ의 마이크를 뺏고 제 친구녀석을 위하여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은 감당할 아픔도 있고, 때로는 감당하지 못할 아픔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전 친구랑 같이 왔습니다.
지금 제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전 노래를 할 줄 모르지만 제 친구녀석을 위하여 힘내라는 의미에서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 이라는 시를 낭송해 주고 싶습니다."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 오리라~~~~~~`
이윽고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이 때 DJ는
"정말 좋은 친구분을 두셨군요. 친구분도 계시면 나오시죠"
이렇게해서 대학생들, 연인들 앞에서 고삐리 두명이 그 무대를 장악하게 된것이지요.
"정말 좋은 친구분을 두셨는데 우리 이 친구분에게 할 얘기는 ?"
"이 친구는 문학을 꿈꾸는 친구이고 전 음악을 꿈꾸는 친구입니다.
전 이 친구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노래 제목은?"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꺼야입니다."
이렇게 울고 있는 친구랑 전 어깨동무를 하고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슴에 몸부림 치는 추억도 가슴에~~
그 자리에 많은 분들이 노래를 마친 저희들에게 축복의 박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짝짝짝
이 친구녀석은 현재 LG전자 본사에 근무를 합니다.
대전에 일년에 한두번정도 내려오는데 내려 올때마다 같이 만납니다.
그리고 술집에 가서 이 노래를 항상 부릅니다.
물론 어깨동무도 같이 하구요.....
단, 항상 제가 술값 수십만원을 계산한다는 점이 지금에 와서는 못 마땅합니다. 케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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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1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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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은 그 사무실을 안 찾아갔습니다.
아니 안 찾아간 것이 아니라 찾아갈 용기가 안났습니다.
그런 후 3일째 되는 날
전 또 다시 이성사무장님을 만나뵙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저에게는 자존심 보다는 일을 더 배우기 위한 열정이 더 높았기 때문이죠.
이것 아니면 안되는데
그까짓 자존심 부릴 때 부려야지 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저 사무장님 그 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ㅡ.ㅡ"
"어? 배종찬이 또 왔어? 하하 이 새끼이거 배짱 좋은데?"
".........(이거 뭘 어떻게 하는거야?).........."
그날 이후로 저의 퇴근시간은 더 늦게 되었습니다.
사무실에서 6시에 마치면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 법률실무를 익히고
8시경부터 스승님 사무실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법률사무소 연수생이 되어 가지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따지거나
일을 마다할 처지가 안되었기 때문에
제가 스승님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는게 배움의 보답을 하는 일이라고는 전 생각하였습니다.
스승님과 스승님의 직속 제자 그리고 저 이렇게 3명이서 일처리를 해도 보통 12시에 스승님
일이 끝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날은 새벽 5시에 겨우 일을 마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새벽에 우리 스승님 말씀
"야 피곤하니까 포장마차가서 소주한잔 먹고 가자 !!"
" 넵 ㅜ.ㅜ" (속에서는 스승님 저 오늘 출근 7시에 하는 데요......입안에서 맴돌 뿐이었습니다.)
소주한잔 먹고 아파트에 정문에 도착하니까 오전 6시 30분 이더군요
저는 가방들고 집으로 가는 중인데 일찍 일어나시는 분들은 운동하러 나오시더군요.
집에 가서 대충 옷갈아입고 씻고 다시 출근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일을 하면 피곤할 텐데 저에게는 피곤함을 몰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밤샘을 하여도 그 다음날 피곤하지 않습니다.
몸은 비록 피곤할지 몰라도
저의 정신세계에서는 몸의 피곤함은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죠
없는 사람들은,
성공을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피곤함을 몸에 달고 삽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방 세상일을 혼자 다 한듯한 착가에 빠지죠
때때로 본인이 왜 피곤한지도 모르면서 피곤함을 느낌입니다. (그쵸? ㅎㅎ)
이러한 피곤함은 목표가 없는 사람들의 피곤함입니다.
큰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기 때문에
피곤할 여력조차 없습니다.
큰 목표든, 작은 목표든 목표가 없기 때문에 서민들이 힘든 것이지요.
첫 월급을 타기전에 전 목표가 굳건하였습니다.
큰 목표는 무진장 돈을 벌겠다.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쓰겠다. !!!!
작은 목표는 그 당시 저의 스승님이신 이성사무장님을 따라잡겠다.
이성 사무장님의 연봉이 일억오천만원 이었거든요
(그 당시의 월금으로 따지면 월 1200만원 정도였으므로 왠만한 변호사급 수준이었죠)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정말 죽을 각오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피곤했냐고요?
천만해요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처럼 행복한 시기가 없었다. 라고 생각듭니다.
이제 작은 목표라도 설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올해까지는 반드시 절약해서 100만원을 모으겠다.
내년까지는 반드시 절약해서 1000만원을 모으겠다.
빚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까지 반드시 돈을 갚고 말겠다.
목표없는 사람들은 목표있는 사람들의 하수인 밖에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오늘도 진일보 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작심삼일 일년에 백번만 하세요.
그러면 알게 모르게 달라진 자신을 찾을수 있게 됩니다.
진정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노력을 위하여 거대한 목표를 지니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저의 목표는 일단 100억입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가지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꿈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꿈이 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꿈없는 삶은 재미없는 삶입니다.
항상 잘 된 사람들을 동경만하고
항상 없는 사람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런 종류의 사람 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하긴 지금의 현실에서 꿈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는 않죠.
다 생각한다고 이루어지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역으로 생각한다면,
꿈이 없으니까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한세상 다 버릴실 생각이면 어쩔수 없구요.
아무리 어렵다. 힘들다 라고 하여도
결국 있는 사람들에게는 요즘같은 기회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없는 사람의 대열에 있다면
꿈을 크게 잡지 마시고 그냥 있는 사람, 즉 부자가 되겠다.
라는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얼마큼 벌어야 부자이냐의 문제는 각 개인이 지닌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자신이 달성가능한 금액부터 지정을 하시고 그 금액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꿈은 결코 멀리있는 이상덩어리가 아닙니다.
꿈은 내가 찾고자 한다면,
꾸은 내가 가지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따 먹을수 있는 감나무의 감하고 똑같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지지 못할 뿐입니다.
난 반드시 가지고 말겠다
난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
라는 꿈이 생기면 감나무의 감을 딸 배짱도 생기고
감을 따기위해 이웃집에서 장대나무를 빌릴 수 있는 뻔뻔함이 생기고
그 장대나무로 냅다 감나무를 쳐서 감을 따 먹을 수가 있는 꼬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만히 누워서 언제 감이 떨어지나 기다리는 순간,
그 감은 누군가가 따 가고 맙니다.
또한 운좋게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진다고 하여도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않는 이상
감이 입에 떨어질 우연성은 높지 않습니다.
감이 떨어져도 얼굴이나 눈에 떨어진다면,
결국 감을 먹어 보지도 못하고 얼굴이나 옷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죠
"재수가 없으니까....
조상탓이니까......"
그것은 자신의 과오를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가난뱅이들의 오래된 습관일 뿐입니다.
왜 남을 탓합니까?
다른 사람이 님들한테 잘못한게 뭐가 있습니까?
님들이 준비안했기 때문에 재수가 없는 것입니다.
준비된 자들에게는 언제나 상큼하고 우연치고는 묘하게 기분좋은 일만 펑펑 생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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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만큼만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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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지 채 한달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아침 7시 출근, 새벽에 퇴근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까
법원계통에서 전 "싸이코"라는 별명이 붙었죠.
한번은 다른 변호사 사무실 친구에게 물어 볼것이 있어서
그 친구네 사무실에 갔는데 그 친구 왈
"야 종찬아 니 그렇게 일한다고 변호사가 월급 많이 준다던?"
"................."
"그렇게 일해봤자 변호사들 좋은 일만 해주는 거야.
넌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데...너만 열나 고생하고 마는거야. 좀 눈치껏 살아라"
참...
할 말이 없더군요.
무어라 막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일단 저보다 먼저 들어온 친구고..
저보다 아는 것도 많으니까 전 더 배워야하니까...등등
그래서 전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야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돈을 떠나서 내가 할 일인데 내가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 아냐"
"야 임마. 그게 살다보면 안된다니까....
누가 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 알아주냐?
그렇다고 월급을 팍팍 올려줄 것 같애?
그냥 고생하지말고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
속된말로 니 아니고서도 사무실을 돌아가잖아."
"............................."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라...
그렇다면 저의 초봉이 45만원인데....
45만원어치 일이 어디에 있는지? ㅡ.ㅡ;;;
좀 난감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너무나 답답하다고 생각들었습니다.
삶을 왜 그렇게 살아갈까?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치열하게 화끈하게, 멋있게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라~~ 이런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하기는 싶겠다.
내 비록 초봉 45만원짜리 인생이지만, 이런 친구들 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이 친구보다 더 성공하고 말겠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취업 안된다. 취업하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필리핀. 인도네시아등에서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작은 일에 성공하지 못한 자는
큰일을 성공하지 못합니다.
작은 것에서 만족감을 얻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큰 일이 그냥 나에게 떨어지지는 않는 법이지요.
서양의 일화중
두명의 도랑파는 철도직원이 있었는데
신입직원이 나이가 많으신 고참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저 선배님 어제 회장님과 선배님이 같은 차에서 내리시든데 어떻게 된 일이죠?"
"응 회장님과 난 한달에 한번정도 식사를 같이 한다네...."
"와우 우리 회장님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회장님이 선배님과 같은 분과 식사를 같이 하죠?"
"........................."
"아니 어떻게 회장님께서. 선배님과 같이 식사를...이유도 없나요? 참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 내가 회장님과 한달에 한번 정도 식사를 하는 이유는...
그 회장님과 난 30년전에 이곳에서 같이 도랑파는 일을 했기 때문이지....
그 사람은 처음부터 회사를 위하여 열심히 일을 했고,
난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을 했거든........"
꼭 서양의 일화를 들지 않더라고,
현재 지금도 그 변호사 사무실 친구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전재산은 5천만원도 안 됩니다.
전 그 친구의 자산보다 10배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게 바로, 받은 만큼 일한다 라는 마음과
내가 한 만큼 많은 돈을 벌겠다 라는 마음과의 차이가
10년후에는 이렇게 많은 차이가 발생되더군요.
앞으로 5년 안으로 20배의 차이가 나지 않을까요?
초봉 45만원이지만, 제 머릿속에는 엄청난 부자의 꿈이 있었습니다.
일하다가 죽는게 나의 소원이다
싶은 마음으로 죽을 각오로 일을 하였습니다.
일이든, 부동산투자든, 주식투자든 대한민국에서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무엇이든지 연구를 하였으며
공부도 하였습니다.
제 나이 27살에 충북 청주시 하복대지구내 대원아파트 상가를 분양 받으려 돌아다녔고
분양을 받지 못하자 프리미움을 주고 1층 상가를 구입하여 부동산도 차려 보았습니다.
물론 청주것 매수하기 이전에 대전 유성구에 부동산을 부업으로 차렸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7살 때 였거든요.
물론 공인중개사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부동산사장이었죠.
(일년만에 청주는 권리금 1500만원 받아 먹고 넘겼구요,
대전 유성구 쪽은 1000만원정도 손해보고 넘겼습니다.)
부동산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크게 배웠습니다. ㅎㅎ
제 나이 27살 때 나이드신 분들에게서 사장님 소리 듣으면서 부동산까지 경영하는
경영자가 되었든 것이지요.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나이는 어렸지만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안되는 공인중개사가 있었고 아줌마가 있었든 반면에
청주의 부동산은 동갑내기 공인중개사에게 월급을 주며 일을 위임시켯는데 그 친구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할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부동산을 처분하였지만 그것이 다 자기 하기 나름인것이지요.
이제부터 받는 만큼 일한다는 생각을 하수구에 버리시구
열심히 일한 만큼 벌겠다
라는 마음으로 열심히..무엇이든지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하늘은 속일수가 있어도
여러분들 자신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출처 : 맞벌이부부 10년 10억 모으기
글쓴이 : 배종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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