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부끄러운 실패담을 적는것은
저의 실패글을 읽고
저와 같은 전철을 밟으시는 분이 없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물론 저보다 더 어렵고 극한 상황까지 경험해 보신분들고 계실겁니다.
우리 모두 힘내요.
좋지 않은 일들은 2003년의 마지막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묻어버리고,
2004년부터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그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울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원합니다.
초기의 원금 8000만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소위 말하는 깡통이 된것은 불과 5개월만이지요.
그지경까지 되니 뭔가에 홀려서 항상 멍한것 같았고,
운전을 할때도, 밥을 먹을때도, 걸어갈때도 오로지 생각은 하나였지요.
빨리 원금 회복을 해야겠다.
어떻게 빠른시간만에 원금 회복을 할까?
초기 저에게 돈을 맡겼던 친구는, 그 정도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처음하는것이니까 약간의 손해는 보고 있겠구나 했을겁니다.
5개월이 지나면서 공부한 책도 늘어서 책장 한 켠을 채우게 되었고,
유명하다는 애널리스트의 기법강의뿐 아니라 비디오, 심지어 클리닉 센터까지
닥치는대로 주식과 관련된것들을 접하려고 했지요.
"다 내가 지금 실력이 없어서 그런거야,,,,,조금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다시 일어서겠지"
하는 희망과 함께.........
계좌는 바닥이 나고 있었지만, 주식에 대한 학습으로 인해 뭔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그래, 그동안 공부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새로 시작하면, 다시 회복이 될꺼야"
라는 나름대로의 자신감을 가지고서, 돈을 마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안사람에게는 비밀로 했지요.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니, 절차가 복잡하고, 안사람이 알게 되는것이 두려워서
손쉽게 돈을 마련할수 있는 카드로 눈을 돌렸습니다.
당시 플래티넘 카드를 발급을 받았기때문에, 현금써비스와 인터넷 카드론을 받아보니,
대략 2700만원정도 되었지요.
거기다가 제 자금 2300만원을 다시 투입해서 5000만원으로 세팅해 놓았습니다.
담배연기를 머금으며, 흐믓해 했지요.
"이제부터는 시간이 문제일뿐이지, 원금회복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거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두번째 깡통으로 가는 아주 짧은 여정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마치 전업투자자처럼 하루 종일 시세판을 쳐다보고, 일희일비했었지요.
그러나, 수익으로 인한 기쁨은 짧고, 손절매를 못해서 얻게되는 고통을 길었습니다.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면, 더욱더 불안해지고,
불안한 심리에 주식을 들고 며칠씩 보낼수가 없더군요.
떨어지면 어쩌나, 이제는 더 이상 손해보면 안되는데........
그때까지도 저의 아내는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카드빚낸것은 알지도 못했고,
그저 " 저 사람이 워낙에 하고 싶은 일에는 모든열정을 쏟아붓는 성격이니까 손해 보고
지금 고민중이겠지....나까지 채근하면 더욱더 일이 안되겠지..." 했었지요.
아내는 사태의 심각성은 잘 몰랐습니다.
더구나,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정성을 쏟느라 아내도 그런 생각할 겨를이 많지 않았나 봅니다.
저는 미안한 마음에, 점점 아내의 얼굴을 대할수가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내는 아이와 먼저 잠자리에 들고,
저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조용히 침대로 가서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부부관계가 소원해 지기 시작했지요.
그럴때마다, 빨리 원금회복하고 주식시장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럴수록, 소위 말하는 미수 몰빵이 잦아지게 되었고,
손실은 기하 급수적으로 빠르게 찾아들었습니다.
실력도 안되면서, 손절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저 눈에 뭐가 씌웠는지....
첫번째 깡통보다 훨씬 빠른속도로 두번째의 계좌도 바닥을 보였습니다.
희망과 자신감은 찾아볼수가 없었고,
그때부터 정신적인 공황상태는 심각해 지기 시작했던것 같습니다.
이것이 저의 두번째 깡통이었습니다.
매사가 짜증스럽고, 불면증에,,,,,본업은 아예 뒤로 젖혀두고,,,,,,그로인해 실직.....
서서히 카드 채권단이 목을 쥐어 오고 있었지요.
"아내에게는 괜찮다,,,,,,조금만 기다려 봐라,,,,,...내가 산 주식이 지금 오르고 있기때문에
지금 팔고 카드빚 갚으면 오히려 손해 아니냐......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팔고 갚자"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하루 한 갑정도 피우던 담배는 어느새 3갑으로 늘고,
매일 매일 술을 마시고 거의 알콜 중독 상태에 가는것 같았지요.
저는 술을 입에 대지도 못했었거든요.
그런, 술을 마시고 취해야 그나마 잠이라도 잘 수 있었기 때문에 안 마실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hts를 접속해 놓은채로 담배를 사러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외출한 사이에 아내가 저의 행동이 미심쩍었는지, hts의 계좌를 보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니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더군요.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습니다.
"나의 무능력함을 보고야 말았구나. 이제 이렇게 무능력한 내 곁을 떠나면 어쩌나...."
이런 생각들이 순간 뇌리를 스치게 되었고, 뭔가 위로를 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가서, 담배만 피우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채, 칭얼거리고 있었고, 그 아이를 달래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베어있었음을 쉽게 들을수 있었지요.
주식투자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습니다.
한참 지난후에 제방에 들어와 아내가 저에게 했던 말입니다.
" 오빠, 난 오빠를 믿어.
오빠 하는대로 당분간 그냥 지켜 볼께. 너무 실망하지 마. "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아이처럼 아내의 작은 가슴품으로 얼굴을 묻고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 작디 작은 아내의 품이 그렇게 따뜻했던적은 없었습니다.
며칠이 흘렀지요.
카드사의 협박조의 전화를 빼고는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매매도 하지 않았고, 매매를 할 돈도 없었으니까요.
그간 소흘했던 아이와도 많이 놀아주었고,
몇달만에 아내와 외식도 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는 했지만, 마음 저 켠에는 왠지 너무나 억울하고 안타까왔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도둑맞은거 같고....
당시에는 그 당시가 제 인생의 바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여기서 더 이상 뭐 더 잘못될 수가 있겠느냐...나는 이제 바닥까지 다 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사치였다는것을 몇달이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에 카드빚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카드사에서는 이번달까지 연체금 해결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겠노라고,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으려면 빨리 연체금 해결하라고 하더군요.
은행대출을 받아서 연체금을 해결할까 고민도 했으나,
막상 은행에 대출신청을 하니, 카드 연체금으로 인해서 대출을 제대로 받을수가 없었습니다.
집을 담보로 해도, 받을수 있는 대출금이 턱없이 부족했지요.
그래서 고민끝에, 소위 말하는 사채업자에게 갔습니다.
제가 직접 아는 분은 아니었으나, 저의 친형님이 아는 분이었고, 친형님의 소개로 가게 되었습니다.
차 두대와, 아파트를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고, 카드빚을 갚았습니다.
카드사와는 연체금 해결하고 카드빚 갚으면, 다시 한도를 그대로 살려주기로 약속을 하고,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연체금 해결하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전국적인 연체률과 저의 신용 등급 하락으로 인해
한도를 줄일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도 하고, 애원도 해 보았으나 한도는 카드사의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것이기때문에
임의로 바꿔줄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다시 한 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았습니다.
급전으로 빌려 쓰려고 했던 사채금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저기 손을 벌려 보았으나, 사채원금과 이자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울며 불며 아버님께 말씀드렸으나,
아버님께서는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해결해라.
무슨일이 있어도 네 가족은 버리지 말고, 네 놈이 해결해라........
돌아오는길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포장마차에 들러, 쓰디쓴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 부으면서, 혼자 갖은 주사를 다 부렸던것 같습니다.
한잔 마시고 울고, 또 한잔 마시고 울고,,,,,
술에 취해서 아마도 차에 뛰어들어서 보험금이라도 탈수 있게 하자.....
무능력한 나를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해 줄수 있는 제가 해 줄수 있는,
가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제가 해줄수 있는것은 그것밖에 없는것 같았습니다.
" 그래,,,,미련없이 뛰어드는거야.........."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께, 종이와 펜을 빌려달라고 했던것 까지 기억이 났습니다.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제 옆에는 저의 아내가 저의 가슴에 기대어 잠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께서 이상하다 싶어 보니, 제가 유서 비스무리한것을 쓰고 있길래
저의 핸드폰에서 집 전화 번호를 알아내 집에 전화하고, 인근 파출소에 전화해 주셔서
저는 인사불성으로 집에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역시 며칠이 지나서 집으로 건장한 사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형님께 전화해서,
"그래도 아는사람 아니냐.....어떻게 좀 해봐라.....
내가 한달에 다만 몇 십만원이라도 갚을테니까 제발 집에는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부탁좀 해 봐라..."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형님은 자기가 아는 사채업자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채권을 넘겼기 때문에,
그 업자가 보낸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쌍소리에 협박까지.....
심지어, 제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지 모른다고,
차부터 압류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었는지, 처음 저에게 돈을 맡겼던 친구가, 다시 2000만원을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차며 집이며 다 뺐기게 생겼으니까 더 이상 미련두지 말고 차와 집은 포기 해라.
이 돈으로, 세 식구 당분간 살 전세집이라도 얻으라면서.......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10년을 모았던 피땀어린 돈을 선뜻 저에게
내 주었습니다. 처음에 3000만원도 다 날렸는데....
" 나한테 빌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너한테 투자하는 거다.
나중에 꼭 성공해서 몇 배로 갚아라.....동업자니까...."
그 친구가 제 손에 돈을 쥐어주면서 제게 던진 말이었습니다.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의 세번째 깡통으로 가는 시작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말대로, 차와 집 모두 처분하고나서, 새로이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더군요.
도박에 빠진사람들의 심정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진짜로 이번이 마지막이다.....딱 한 번만....
어차피 이제는 주식을 시작하기 전의 상태로 원상복귀는 어렵다.
이제 다시 일어설수 있는것은 주식밖에 없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 했습니다.
당시 화림모드라는 종목이 쏠쏠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전이 걸렸네 어쩌네.....1000%로 띄운다는둥.....m&a가 있다는둥.....
챠트는 잘 모르지만, 모양새가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이거다......"
과감하게 미수까지 동원해서 샀습니다.
그리고 이틀동안 컴을 켜 보지도 않았습니다.
자꾸 보면, 조그만 먹고 팔거 같아서였지요.....그져 올라갈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다음날,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증권사 직원이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학교 후배라서 가끔 전화 통화로 인사 나누던 사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고객계좌를 관리해 주었는데, 자기도 화림모드 샀는데 형님도 사지 않았나고...
근데...부도라고.....
종교는 갖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습니다.
남에게 돌멩이 하나 안 던져 보았는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미친놈 처럼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이 저의 세번째 깡통이었습니다.
아니,,,제 인생의 마지막 깡통일것입니다.
저는 바로, 차를 타고 강릉으로 갔습니다.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미친듯이 차를 몰고,,,,,,,,무작정 바닷가로 가서 여관방을 잡았습니다.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시내 약국을 돌면서, 감기 몸살약을 샀습니다.
수면제는 못팔게 되어 있다고 알고 있었기때문에,
수면제는 못사고, 가끔 감기약에 환각 효과가 있어서 청소년들의 약물복용 어쩌고 한번에 과다복용하면
죽음에 이를수도 있다는 내용이 뉴스에 나온거 같아서 약을 샀습니다.
" 그래.....한 입 가득히 털어넣고,,,,,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가자...."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느즈막히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아빠 소리도 못하는 아이에게 저는 나즈막히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과함께 며칠있다가 들어가겠노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더 전화기를 붙잡고 있으면, 약을 털어넣을 용기가 없어질것 같아서였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목만 메인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흐느낌소리에 저라는것을 느끼셨는지, 계속 제 이름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이내 어머님도 울면서 제 이름을 부르짖으셨습니다.
"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죄송합니다"
이것이 어머님과의 전화 통화의 전부였습니다.
가슴이 후련해 졌습니다.
왠지 모를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한손에는 소주병을, 다른 한 손에는 약봉지를 꼭 쥐고 백사장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습니다.
백사장에 혼자 앉아서,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습니다.
지난 1년이 제발 꿈이었기를 바랬지만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서서히 앉아있기가 힘들어질 정도로 취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할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하고, 다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는길에 소주 한 병을 더 사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나서, 담배를 물었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술을 마셨습니다.
속이 타는듯 뜨거웠습니다.
지갑을 꺼내, 아내와 아이의 백일 사진을 보았습니다.
핸드폰의 진동은 계속 되었으나, 이것이 마지막 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원을 꺼놓지는 않았습니다.
사진을 부여잡고 흐느꼈습니다.
다시 유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날수만 있다면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아들,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
5분 10분...시간이 흐를수록 취기로 인해 제 몸 가누기가 힘들어졌음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주머니로 손이 갔습니다.
그리고는 약을 꺼냈습니다.
유서를 방 바닥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약을 한 웅큼 쥐고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주를 들이켰습니다.
침대에 가지런히 누웠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가는것과 비례하듯이 제 생명의 불빛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구나.......죄송합니다......."
꿈에서인지 어머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저를 끌어안고,
"너 이러면 안돼, 어서 일어나, 살아야해....제발....일어나"
그리고 다시 저의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것이 그날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여관방의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하다,,..이상하다,,,,소리가 들리면 안되는데...이상하다,,,, "
눈이 안 떠지기를 한편으로 바라면서, 천천히 눈을 떠 보았습니다.
천천히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베개가 축축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물이 촛점이 맞아 또렷이 눈에 들어올 즈음에, 천천히 손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보았습니다.
침대는 온통 이물질로 엉켜 있었습니다.
사태 파악이 되었습니다.
군데 군데, 미처 녹지 않은 알약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습니다.
아마도 진짜 죽을 용기는 없었나 봅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하루 더 있겠냐고........
꿈에 본 어머님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또다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 어머니...감사합니다..."
다시 백사장으로 갔습니다.
저 멀리 수평선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세상에 빚이 많아서 아직 죽지 못했나보다. 정말로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보자.!!!!"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늘길이 마치 꽃길 같이 느껴졌습니다.
당장에 사채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그것마져도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물로 지져분해진 옷을 대충 털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사채업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차와 집 모두 처분하겠노라고.......
그리고, 아내와 아들은 처가로 보냈습니다.
"며칠만 가 있어.....내가 월세방이라도 하나 얻어서 다시 데리고 올께...."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가는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안타깝게 느껴질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이를 악물었습니다.
치밀어오르는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당장 일자리부터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일단 신문배달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컴퓨터와 캠코더를 중고로 팔고 중고 오토바이 한대를 샀습니다.
노트북과 책 몇권만을 챙기고 친구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서 걱정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며칠 새벽에 신문을 돌려보니, 우유배달이랑 같이 하면 좋은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우유배달까지 같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볼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마스크를 하고 배달했습니다.
그러자 그것도 저에게는 사치이고, 창피한 일이 아닌데 그럴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시반에 배달이 끝나면, 택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최대한 활용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집으로 들어와서,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주가 챠트도 계속 공부하고....
스르르 잠이 들어 새벽 3시에 일나가고.....
사랑하는 아내,아들과 떨어져 있다는것은 마음이 아팠지만, 저 나름대로는 다시 마음의 안정과
평온함을 찾아왔습니다.
월급이라고 전부 받아봐야 예전 월급의 십분의 일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습니다.
추운날씨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수천번을 되뇌입니다.
"나는 다시 일어선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월세 단칸방이라도 얻을수 있습니다.
아내몰래,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방을 얻었습니다.
이제 2004년 1월 1일에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다시 데려올수 있습니다.
그 작디 작은 집에서 재기하고자하는 저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눈을 적십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밝히기에는 즐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실패를 단 한분이라도 겪지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부를 드러냅니다.
요즘 저는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비로소 이제야 저는 자랑스런 가장, 자랑스런 아들, 자랑스런 친구가 될 자격이 생긴것 같습니다.
눈물로 얼룩졌던 2003년을 생각하면서 추억으로 떠올리수 있게 되기를 정말 바랍니다.
제가 주식 경력은 얼마 안 되고, 아직도 미천한 하수이지만, 그간 뼈저리게 느낀것이 있습니다.
주식은 시세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것을 말입니다.
가장 믿어야할 것도, 가장 불신해야 할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것을 말입니다.
그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주식에서 성공할수 없다는것을 말입니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애널리스트도 아닌, 이라크 전쟁도 아닌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렸을지도 몰랐던 나의 아내와 아들..........어머니...친구....
지금도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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