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의 한 칼럼에서 5천평 농사짓는 어느 늙은 농부의 손익계산을 소개했습니다. 이에 대한 많은 분들께서 댓글로 혹은 쪽지와 e-메일로 농촌의 현실을 공감하시고 격려해주셔서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우리 농촌은 -산촌, 어촌도 마찬가지로- 언론매체를 통해서 알려진 것보다도 훨씬 더 노령화되어 있는데다가, 기후변화가 심해짐에 따라 갈수록 작황이 불안정하며, 석유 비료 농약 등 투입 비용의 급상승으로 빈곤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간혹 정부에서 억대농부 어쩌고저쩌고 홍보도 합니다만 실제로 억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사람은 1개 읍.면 당 1명이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일 것입니다. 그나마 억대농부들의 내막을 자세히 뜯어보면 연 매출 중 대부분을 부채상환에 쓰거나 시설충당금과 원자재비용, 놉(인건비) 등으로 지출되기 때문에 순수하게 연간 3천만원을 손에 쥐는 농가는 극히 드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량한 마음으로 척박한 우리 농촌에 보탬이 되고자 하시는 분을 위해 최근에 제가 겪은 일을 소개해드리오니 이 기회에 조금 더 농촌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지난 10월초 우리 마을은 호박고구마를 수확할 때가 되어서 대부분의 농가의 고구마를 제가 팔아드리기로 했습니다. 소위 ‘도농직거래’를 시도한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농협이나 읍내의 도매상에 넘기는 가격보다 20%이상 높은 가격에 매수하였다가 소비자들이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격보다 10~20% 싼 가격에 제 지인(지인의 가족이나 회사동료)들에게 팔았습니다. 당초에는 50박스(10Kg/1Box)나 팔면 성공이다 싶어서 시작하였는데, 값도 싼데다 맛도 좋아서인지 버즈마케팅(입소문) 효과로 150박스나 팔게 되었습니다. 밭에서 캐어 말리자마자 곧장 박스에 담아 우체국으로 보낼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우리 동네에서 생산된 고구마의 절반 이상은 제가 팔았을 것입니다.
그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고구마 판매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2건이 있었는데, 그 한가지는 후배의 -농촌 출신인- 모친께서 고구마 사이즈가 너무 작다면서 아들을 통해서 제게 불만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나 작은 것이 많이 섞였는지 퇴근하면 폰카로 찍어서 내 폰으로 보내줄래? 사이즈가 문제될 만하면 환불해줄게”
했더니, 그 후배는 다음날 하는 말이
“엄마가 작은 것들은 죄다 버렸어요. 찍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네요”
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농촌에서는 상품성이 있는 먹기 좋은 것들은 모두 내다팔고, 벌레 먹은 것, 너무 작은 것, 썩기 직전의 잔망스러운 것들만 주로 먹곤 합니다만, 아무리 크기가 작다 한들 어찌 그 아까운 것들을 작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버릴 수 있는지…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또 한가지는 보름 전에 주문했던 분이 한참 지난 바로 오늘 민원(?)을 제기한 사례입니다. 아마도 고구마박스를 수령하고서 개봉도 안 한 채 어느 구석엔가 고이 모셔두었다가 뒤늦게 개봉해보니 일부가 곰팡이가 피고 물러버린 모양입니다. 절반이나 못 먹는걸 주었다면서 항의를 하길래 저는 보관에 대해서 몇 마디 해주려다가 그냥 전액환불해주고 말았습니다. 그분과 다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상식차원에서 알려드리자면 고구마는 온도나 통풍조건에 예민하므로 반드시 10~20도여야 하고 밀폐되지 않은 상태로 보관해야 이 같은 문제가 안 생깁니다.
고구마 다음으로는 들기름이었습니다. 우리마을은 벼 다음으로 많이 재배하는 것이 산짐승의 피해가 적은 들깨인데, 수확된 들깨로 직접 파는 것보다는 이것을 잘 걸러서 기름으로 짜면 부가가치가 크기 때문에 농가수입에 훨씬 보탬이 되는 들기름으로 팔아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역시 직거래므로 파는 농가나 사는 소비자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였습니다. 들기름 주문자는 대부분 고구마구매자였습니다. 이것 역시 1.8리터들이로 예상보다 10병이나 더 팔았습니다. 여기서 작은 문제가 생겼던 것이 ‘1.8리터는 너무 큰 용량이니 300~500ml로 작은 단위로 팔아달라는 둥, 1.8리터를 3~4등분하여 작은 병에 나누어 담아달라’는 요구였습니다. 물론 소비자의 이런 요구는 정당합니다만, 농촌현실에서는 수용하기가 벅찹니다. 小포장으로 팔자면 기름을 짜서 용기에 담아주는 방앗간에서 기꺼이 응해줄 리도 만무하거니와 3~500ml 작은 병은 구하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좀 서글프긴 합니다만- 이런 깡시골에서는 슈퍼마켓조차 없으니 작은 페트병에 담긴 음료수는 마실 일도 없고, 2홉들이(360ml) 작은 병에 든 소주는 주민들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물론 남자들은 소주를 즐겨 마시긴 합니다만 1.8리터들이 소주만 한꺼번에 구입합니다. (이 소주병에 들기름을 담습니다) 그게 같은 가격대비 양이 2배가 넘기 때문이지요. 이런 현실 때문에 주문자의 소단위 판매 요구를 들어주기 힘들다고 말씀해드리면 ‘농촌이 배가 불렀다’는 뉘앙스의 반응을 보입니다.
들기름 다음으로는 서리태! 작년에 워낙 비쌌기에 (15,000원/kg) 올해 많은 농가에서 서리태를 재배하였으므로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수확전임에도 제 지인들에게 미리 주문예약을 받았습니다. 예약만 받고 대금은 배송 전날 입금하는 조건이었고요. 그런데 올해도 8월의 폭우 때문이었는지 막상 거둬보니 콩알도 작고 쭉정이와 벌레 먹은 것들이 많아서 실제 작황은 작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른바 ‘풍신난’ 콩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 약속한 가격에 넘기려던 어떤 농가에서는 당초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요구했고, 아무래도 농가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저로서는 예약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비싸진 가격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만, 일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물론 오른 가격도 시중가격에 비해서는 20~30% 싼 가격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제가 손해를 부담했습니다만, 가격을 올리려는 농가나 처음 가격으로만 사려는 주문자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들더군요. 같은 지역의 똑같은 농산물일지라도 산지의 조건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대단히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지금도 한창 주문예약 중인 현미찹쌀입니다. 전국적으로 작황이 일정하고 정부에서 수급을 관리하는 쌀 같은 작물은 다른 작물에 비해서 유통마진이 적은 편입니다. 그러므로 배송비를 감안하면 직거래주선자의 역할이 없을 것이라 보고 직거래 후보작물로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저와 친한 어르신(지지난 회 칼럼의 경운기 운전자)께서는 제가 무슨 직거래의 제왕이라도 되는 양, 햇현미찹쌀을 농협에 넘기는 가격보다는 더 비싸게 팔아주길 원하셨습니다. 대형마트에 방문해서 가격조사도 하고, 다른 인터넷 직거래 판매현황을 조사해본 결과, 20Kg 1포대 기준으로 3천원 정도는 더 받게 해드리고, 소비자도 5천원 이상 싸게 구입할 여지는 있었으나, 이번에는 다른 것들에 비해 어려움이 더 컸습니다. 현미찹쌀은 멥쌀처럼 많이 먹는 곡식도 아니거니와 3Kg, 5kg 소단위 구입을 원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을의 주거래(?)방앗간에서의 포장단계에서는 20Kg포대 단위 미만으로는 불가능했고, 일단 초대형정미기를 가동하자면 최소한 쌀10가마(40포대) 이상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40포대 이상의 주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쩐지…각 농가마다 가정용정미기를 갖고 있더라니… 만약 총 주문량이 40포대가 안되면 모든 주문예약을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는 것이지요. 소포장도 아닌 20Kg대포장 찹쌀을 최소한 40포대 이상 주문 받아야 한다는 미션! 만약 실패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제 도시의 친구와 후배들이 자기들 회사 게시판에 공지해주어서 목표치의 절반을 넘겨서 한숨은 돌렸습니다만 이런 위험한직거래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더군요.
어떻습니까? 이런 척박한 농촌의 현실이 체감되시는지요? 모든 농촌이 이렇지는 않겠습니다만 도시의 소비자 여러분이 이런 현실을 대강이라도 이해하신다면 앞으로 우리 땅에서 나온 농산물에 대해 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우리 농부들에 대해서 더욱 아련한 고마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FTA가 확대되면 우리 농촌은 더욱 그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만, 그래도 우리 대부분의 농부들은 죽는 날까지 천직인 농사를 포기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농촌과 농부를 위해 해주셨으면 하는 제 바람은 무척 소박합니다. 이미 농촌을 부담스러운 계륵으로만 취급하는 정부에게는 이제는 별로 기대를 안 합니다. 국산농산물만 먹어달라는 신토불이를 외치는 것도 지쳤습니다.
그저 우리 농촌에 대한 도시인들의 이해심과 우리 농산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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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댓글을 보니 몇몇 회원님께서 직거래에 관심이 있으신 듯 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바, 혹시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들기름과 검은콩(서리태 or 흑태 or 서목태 등), 찹쌀현미 직거래에 참여하고 싶으시면
제 e-메일(habit7@hanmail.net)이나 Daum쪽지로 주문자 성명, 주소, 연락처, 공구참여품목/수량
등을 적어서 보내주시면 가격 등 상세 내용과 주문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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