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게와 사리
한 생애를 막음하는 죽음은 엄숙하다.
저마다 홀로 맞이 하는 죽음이므로
타인의 죽음을 모방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그만의 죽으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숙하다.
일찍부터 선가에서는 '마지막 한마디'
(이를 임종게偈 또는 유게遺偈라고 한다)를
남기는 일이 죽음의 무슨 의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그것은 대개 짧은 글 속에 살아온 햇수와
생사에 거리낌이 없는 심경을 말하고 있다.
바로 죽음에 이르러 가까운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생애의 마지막 그 한마디다.
따라서 죽기 전에 시작詩作을 하듯이 미리 써 놓은 것은
유서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임종게는 아니다.
타인의 죽음을 모방할 수 없듯이 마지막 남기는
그 한마디도 남의 글을 흉내 낼 수 없다.
그의 한 생애가 그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가장 그 자신다운 한마디여야 한다.
13세기 송나라 조원祖元 스님은 이런 임종게를 남겼다.
부처니 중생이니 모두 다 헛것
실상을 찾는다면 눈에 든 티끌
내 사리 천지를 뒤덮었으니
식은 잴랑 아예 뒤지지 말라
육조 스님의 제자인 남양의 혜충 국사가 죽으려고 할 때
마지막 유언을 듣고 싶어 하는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말해 온 것이
모두 내 유언이다"라고 했다.
또 어떤 스님은 제자들이 임종게를 청하자,
임종게가 없으면 죽지 못한단 말이냐고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말이 곧 내 임종게다"라고 했다.
사리舍利란 범어에서 온 말인데 '불타고 남은 유골'을 뜻한다.
불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본래 무일물을 그대로 보이는 소식이다.
고려 말 백운 경한 스님은 이렇게 읊었다.
사람이 칠십을 사는 일
예로부터 드문 일인데
일흔일곱 해나 살다가
이제 떠난다
내 갈 길 툭 트였거니
어딘들 고향 아니랴
무엇 하러 상여를 만드는가
이대로 홀가분히 떠나는데
내 몸은 본래 없었고
마음 또한 머문 곳 없으니
태워서 흩어 버리고
시주의 땅을 차지하지 말라
조주 스님은 세상을 뜨려고 할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불태워 버리고
사리 같은 걸 골라 거두지 말라.
선사의 제자는 세속인과 다르다
더구나 이 몸뚱이는 헛것인데 사리가 무슨 소용이냐.
이런 짓은 당치 않다! "